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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고린도전서강해 52) 부활 후 어떤 몸으로 오느냐 (수요예배 20190123)

by 온누리선교 2019. 1. 22.


 

성경본문: 고린도전서 15:35~38

35.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36.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37.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38.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설교: 부활 후 어떤 몸으로 오느냐

 

모든 종교는 죽음에 대해 아주 중요하게 말합니다. 종교의 기능 중에 하나가 사람이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 마음의 평안을 가지고 살도록 돕는 것입니다. 죽음은 아무리 부자나 권력자라도 결국 무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기에 죽음을 생각할 때 세상을 사는 동안 어떻게,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 것인가 그런 교훈도 얻게 됩니다. 그래서 힌두교나 불교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는지에 따라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나는 때에 동물로, 인간으로 거기다 높은 신분으로 태어난다고 합니다. 또 유교는 죽어서 귀신이 되어 조상신으로 자손들을 돌봐준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하나님께서 만든 사람은 원래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였는데,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어 죽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죄의 값으로 마귀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죽어 지옥에서 영원히 살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죄의 값을 죽음으로 치루시고 3일 뒤에 다시 살아나셔서 영원히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에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단서가 붙습니다. 사망권세를 이기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만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영원히 천국에서 사는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사도 바울이 부활의 소망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그저 겉만 관심 있어 하는 고린도 교회성도들에게 부활에 대해 아주 성실히 인내하며 답하고 있는 내용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모습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에게서만 보이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부활의 소망에 대해 더 자세히 느껴보고 더 감사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5~37절의 말씀입니다.

35.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36.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37.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바울은 고린도교회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부활의 방법과 부활한 후의 상태가 어떠한가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예를 들어 씨가 죽어야 싹을 내고, 심기운 씨앗이 새로운 형태를 가지듯이, 사람도 부활 이전과 이후의 육체는 전혀 다른 상태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비유를 들어가며 부활에 대해 깊고도 꼼꼼하게 사도바울은 설명하는 걸까요?

고린도교회는 사도 바울이 2차 선교여행을 하던 가운데 16개월 동안 사역을 하면서 세웠던 교회였습니다. 바울의 1,2차 선교여행 기간을 통틀어 가장 오래 머물며 사역을 한 교회였습니다.

교인들 가운데는 유대인, 헬라인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되기 전에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다 벗어버리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 가운데 사두개인들은 부활이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부활이 없다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영도 없고, 귀신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헬라인들은 어려서부터 들어온 헬라 철학의 사상이 몸에 배여 있었습니다. 헬라 철학은 사람의 육신이란 영혼의 감옥과도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도 영혼은 불멸하는 것이다. 헬라철학은 영혼 불멸설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부활을 이야기 할 때, 헬라인들에게 영혼은 영원히 산다는 이론은 늘 들어오던 익숙한 이야기였지만 육신의 부활, 육신의 불멸이라는 말은 들어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 가운데 부활의 진리에 굳게 서 있지 못한 일부를 위해 고린도전서 15장을 기록한 것입니다. 이 장은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것은 역사적인 사실’(Historical fact)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상상, 신화, 소설, 허구가 아니라 500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몸을 직접 보고 체험한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한 부활을 믿는 사람은 천국에 가는 것이고, 믿지 않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비웃는 질문에 대해 사도 바울은 대답하는 것입니다.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35)

이 말은 진지하게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사는 것이 말이 안된다며 만약 산다며 어떤 모습으로 오냐는 것입니다. 다시 갓난 아이로? 죽은 그대로의 모습대로? 늙은 모습으로? 아주 예쁘고 젊었을 때 모습으로?

이러한 비웃음에 사도 바울은 두 가지로 나누어서 대답을 합니다.

첫째로, 어떻게 죽은 자들이 살아날 수 있는가? 다시 말하면 부활이 가능한가?라는 말입니다.

 

자연을 보면, 씨앗이 땅에 뿌려져서 죽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거기서 싹이 나고 줄기가 생기고 잎이 나오고 열매가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식물 세계의 자연법칙에도 얼마든지 부활의 진리가 있는 것입니다. 씨앗이 죽지 않으면 어떻게 싹이 나고 줄기가 생기겠습니까? 다시 말하면 자연에도 부활이라는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곤충이나 동물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애벌레 속에서 호랑나비가 나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애벌레가 깨지면서 잠자리가 나옵니다. 아주 놀라운 일입니다. 또한 올챙이 알이 깨지고 그 속에서 올챙이가 나오고 개구리가 되는 것도 대단한 일입니다. 죽어서 다시 사는 이 부활의 현상은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자연에도 일어나는 일을 어찌 없다고 말하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12:24)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밤이 되면 잠자리에 듭니다. 잠자는 시간 동안에는 무슨 일이 어떻게 되는지 인지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침이 되면 잠에서 깨어납니다. 이런 일들이 사람 인생의 1/3동안 일어납니다. 만약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심장질환, 두통, 소화불량 그리고 정신질환까지 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사들은 규칙적으로 자고 깨는 일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영적인 면에서도 봐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죽음과 부활을 매일같이 연습하고 있습니다. 밤에 잠을 자는 것은 죽음 연습을 하는 것이고, 아침에 깨는 것은 부활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왜 부활이 없겠습니까? 부활은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예전부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꿈꾸었습니다. 이집트를 비롯한 고대 민족들은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여 이 땅에서 살 때 가졌던 자신의 몸을 미라로 만들어 그대로 보존하였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날 그 흙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실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 사실이 아닙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38절입니다.

38.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부활은 하나님이 그 뜻대로 행하시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인간의 생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권능과 권세로 마치 처음 이 세계를 창조하실 때처럼, 그리고 처음 인생을 창조하실 때처럼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 순식간에 홀연히 일어나는 것입니다. 1551~52절에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의 몸과 부활의 몸은 질적으로 다른 몸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주신 몸입니다. 부활 후에 어떤 몸이든지 베드로가 베드로가 아닌 것도 아니고 바울이 바울이 아닌 것도 아닐텐데 부활 후의 모습에 대해 우리가 신경쓸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활하여 하나님께서 변화시켜주신 몸으로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한 가지 이야기를 소개하며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터키에서 선교하시던 선교사 한 분이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설명하려 했습니다.

"난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길을 가는데 두 갈래 길을 만났습니다. 어느 길이 내가 목적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길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누군가에게 길을 물으려고 하다가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이요 또 한 사람은 죽어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누구에게 길을 물어야 하겠습니까? 산 사람입니까? 죽은 사람입니까?"

그러자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당연히 산 사람에게 물어야하지요."

그러자 선교사님께서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어찌 살아계신 예수님을 내가 찾아가지 죽어버린 마호메트를 찾아가겠습니까?"

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는 종교들 중 유대교, 이슬람교는 예수님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고 있지만 절대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는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는 좋은 랍비였다, 훌륭한 선지자였다고만 하지 하나님의 아들로 죽었지만 3일 만에 살아나셔서 500여명의 많은 사람들 앞에 보이시다가 그대로 하늘로 올라가셨다라고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왜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부활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귀한 말씀을 받았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믿음으로 한 걸음 더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또한 부활은 반드시 있으며 또한 하나님의 심판도 반드시 있고,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가 부활 후 변화된 모습으로 영원히 살게 될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그렇기 때문에 결코 헛된 것이 아닙니다. 이 사실을 깊이 마음에 새기시고 하루하루를 주님의 은혜 안에 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

우리가 주님의 놀라우신 은혜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부활의 비밀도 알게 하시고 부활의 기쁨도 누리게 하시며 부활의 소망을 가지며 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처럼 영적으로 무지하지 않게 하시고 날마다 주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