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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벧전 4:16~19 주일예배 20190120)

by 온누리선교 2019. 1. 19.

성경봉독 : 베드로전서 4:16~19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설교: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요즘 제 아들이 친구들과 함께 스케이트 타러 간다기에 스케이트를 배워주러 한 두 번 빙상장을 갔습니다.

맨처음엔 얼음 위에 탁하니 올라서는 순간 벽에 의지하여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가더니 좀 서서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제 벽에 붙지 말고 내 손을 잡고 몸을 숙이고 한 발자국씩 스케이트를 타봐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손을 잡고는 벽에 몸을 착하니 붙이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손은 제게 있는데 몸은 벽에 붙어 있으니 어떻게 앞으로 나가겠습니까? 그래서 몸을 띠라고 몇 번을 말하고 좀 앞으로 당기니 살짝 벽에서 몸이 떨어지기는 했는데 어느 샌가 몸이 자석처럼 딱 하니 벽에 붙이는 것입니다. 왜요? 미끄러질까봐 넘어질까 봐 그렇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미끄러질 때 제가 잡아 줄 것이고 넘어지면 제가 일으켜 줄 텐데 무슨 상관일까요? 그리고 손을 잡고 벽에서 떨어져야 빙판을 가르며 스케이트를 탈 터인데 얼굴은 저를 바라보지만 몸은 완전히 벽에 붙어 있으니 빙판 가운데에서 스케이트를 탈 수가 없었지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만을 바라보겠다고 하고 믿음으로 나간다하면서 세상이라는 벽에 딱 붙어서 평생 저 축복 가운데로 가지 못하는 그리스도인들도 많습니다. 미끄러질까 무섭고 넘어지는 것이 두려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가운데 있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19절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 지어다.” 다시 말하면 우리 영혼을 이 세상 만드시고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께 맡기라는 말입니다.

오늘 주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말씀입니다. 잘 받드셔서 주님의 뜻대로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6절입니다.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오늘 본문에 보면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3년을 따라다닌 스승 예수가 붙들렸을 때, 무서웠고, 또 자기 스승인 예수님이 부끄러웠습니다. 창피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붙잡혀 가셨을 때 우리도 다 잡혀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 저 사람 모른다.’ ‘저렇게 형편없는 인간과 나를 결부시키지 말라3번이나 그랬습니다.

베드로는 그때를 생각하면서 이 말씀을 합니다. 그때는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셨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베드로는 무엇을 부끄러워합니까? ‘예수님을 부끄러워했던 내 모습이 부끄럽다.’ 베드로의 고백입니다.

 

예전에 제가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떤 권사님께서 동네 시장이 아닌 다른 지방 시장에 가서 물건을 좀 사셨습니다. 동네에는 자기가 어떤 교회 다니는 권사라는 게 다 알려졌으니 깎고 싶은 데로 고집도 부리지 못하니 여기선 좀 제대로 진상 아닌 진상 좀 부려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가게를 들어가서 부르는 값의 반을 딱 깎았습니다. 당연히 그 가게 사장님께서 안된다고 하셨겠지요. 그랬더니 외지 사람이라 무시하냐며 온갖 말로 진상을 부렸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30%나 깎아서 물건을 샀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주일에 교회를 갔는데, 광고시간에 목사님네 친척분들이 방문하셨다며 인사했는데, 그 중의 한 명이 바로 그 가게 사장님이셨습니다. 너무 놀란 권사님! 세상에 그 시장에 많은 가게가 있었는데, 하필이면 왜 그 가게 사장님네 가서 물건을 샀는지!! 얼굴을 가리고 피해 다니느라 아주 애를 먹었습니다. 그 날 저녁 하나님 앞에 회개 기도를 했답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딸이고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산 그리스도인인데 하나님의 얼굴에 먹칠을 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초기교회시대에는 어떠한 고통과 불편함이 있더라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는 것이 마치 국가대표선수나 된 것처럼 그렇게 자랑스러운 이름이었습니다.(11:26) 복음서를 읽다보면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은 참으로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이름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이란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었고,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그대로 행하는 사람들(2:10)'그리스도인'이라 불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귀한 자리를 얻으며 그 자리에 맞게 행동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참아야 할 것도 있고 조심해야 할 것도 많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귀하게 산 존재이므로 하나님의 아들 딸로서 귀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고 도리어 영광스럽게 만들며 사는 것입니다.

 

17~18절 말씀입니다.

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어떤 목사님의 지옥에 관한 설교를 듣고 있던 한 부인이, 목사님에게 자녀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목사님이 있다고 대답하자, 그 부인은 "그렇다면 질문할 것이 있는데요. 자녀가 고통 가운데 빠져 있어도 구해주지 않는 아버지가 있다면 그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할까요?"하고 물었습니다. "그야 물론 그런 아버지는 폭군이나 무자비한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요."

 

목사님 대답에 부인은 "목사님께서는 지금 하나님을 그런 하나님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권능을 가지시고 그 자녀들을 구원치 않고 지옥에 떨어뜨린다면 폭군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고 비판했습니다. 이때 목사님은 대답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부인, 부인께서는 한 가지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옥에 있는 자녀들은 한 사람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지옥에 있는 자녀들은 모두 마귀의 자녀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천국에 있거나 천국으로 가고 있는 사람들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자녀들을 위한 집을 따로 가지고 있고, 마귀는 그 자녀들의 집을 따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죄 회개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믿음의 사람들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세상적으로 즐기고 살다가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을 내어줄 정도로 좋으신 분, 선하신 분이라며 이용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뭐라고 하는 줄 아십니까? "우리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자. 하나님은 선하셔서 벌을 내리실 분이 아니시다"라고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그리스도의 심판 날, 그런 말이 얼마나 자신한테 큰 실수였고, 주님 앞에 얼마나 큰 죄를 지은 것인가를 깨달을 날이 반드시 옵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하지 않은 사람들은 반드시 사망 가운데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베드로 사도는 그리스도인들의 고난과 시련당하고 있는 현실과 장차 반드시 주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셔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고 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17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이곳에서 세상 사람들이 받을 하나님의 심판의 두려움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의 순서를 말씀해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먼저 하나님의 집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고 18절에 보면, 여기 겨우 구원을 얻었다는 말은 어쩌다가 얻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가 살면서 진짜 믿음을 가졌는지 안가졌는지 사단의 시험을 당했지만 그래도 그 시험을 이겨내고 그 와중에서도 하나님을 놓치 않았던 그 구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기 위해 많은 어려운 길을 걸어온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럼 무엇을 위해서 그리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내 인생에 평안이 넘치고 많은 보살핌과 도움을 받은 하나님의 축복 받은 여러 일들 때문입니다. 하루하루가 소망이 없고 꿈이 없이 살던 우리의 인생이 이제는 죽어서도 영원히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사는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끝까지 세상의 방법으로 살고 세상이 주는 헛된 소망을 가지고 산다면 경건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설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하나님의 뜻대로 받는 고난이라면 이런 고난은 우리의 구원을 온전하게 만들고 우리들로 하나님 앞에서 상급을 받는 축복이 따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하지 말고 베드로가 본문에서 강하게 말한 대로 참고 견뎌서 선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야할 일을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9절입니다.

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어떤 해안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어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바다에는 이상하게 해초가 많아서 고기를 잡는데 방해가 된다고 투덜거렸습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늙은 어부가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해초가 없으면 새우새끼도 없단 말이다! 그리고 새우가 없으면 고기가 있을 수 없어!"라고 말입니다.

정말로 우리 생활 가운데 해초같은 장해물이 늘 즐비하게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도리어 우리 믿는 자들에게 축복을 가져오게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 후서 4:17~18 말씀에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겨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했습니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이 말씀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가 보이는 것에만 마음을 빼앗기고 살아간다면 영원히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할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해초만 보고 그 안에 있는 귀한 새우를 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새우를 보지 못하면 고기를 잡을 수 없고 고기를 잡을 수 없으면 굶어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해초만을 바라보며 살 듯 하나님을 보지않고 사단이 주는 보이는 것만 보고 살아 자신들이 서서히 죽어가고 망해가는 것을 모릅니다. 무시하고 산단 말입니다. 그러나 19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뜻 때문에 고난을 받거나 하나님 앞에 선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그 영혼을 책임져 주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어렵고 힘든 일이 눈앞에 보인다하여도 하나님께 의지하십시오.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무시하지 마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소용이 없다고 비웃지 마시고 온전히 하나님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머리카락도 세시고 우리의 옛날 일도, 그리고 미래 일도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방법으로, 가장 완벽한 방법으로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왜요?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니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니까요. 우리가 하나님만 바라보니까요.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산 귀안 영혼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신 귀한 주님의 말씀 평생 잊지 마시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모든 것을 맡기시며 사시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위대하신 능력의 주 하나님!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받들어 귀하게 듣고 행하려고 합니다. 하나님 안에 살면서 많은 세상의 유혹과 시험이 있지만 주님께 맡기고 믿음으로 나아가니 우리를 축복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은혜로 하루하루를 살게 하시고 말씀 가운데 새롭게 하시며 기도로 늘 주님과 가까이 함께 하게 하옵소서! 어디를 가든지 어디에 있는지 주님의 이름을 높이며 살게 하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