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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계시록 강해 39) 유리 바다 위에서 부르는 미리 앞당긴 노래 (수요기도회 20260429) 본문

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요한계시록 강해 39) 유리 바다 위에서 부르는 미리 앞당긴 노래 (수요기도회 20260429)

온누리선교교회 2026. 4. 29. 09:06

성경 본문: 요한계시록 15:1-4

1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4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설교: 유리 바다 위에서 부르는 미리 앞당긴 노래

 

치명적인 병에 걸린 환자에게 의사가 휘두르는 칼은 공포의 대상입니다. 생살을 가르고 피를 흘리게 하는 행위는 겉보기에 가혹한 폭력처럼 비춰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날카로운 절개는 환자를 해치기 위함이 아니라, 몸속에 퍼진 암세포를 제거하고 생명을 붙잡기 위한 최후의 수단입니다. 수술실의 고통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살아나기 위해 반드시 지나야만 하는 필수적인 관문인 셈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보여주는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엄중한 심판 역시 이와 같은 '영적인 수술'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세상에 가득한 불의와 악독, 그리고 인류를 좀먹는 죄의 질병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방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다시 온전하게 만들기 위해, 마치 숙련된 의사가 종양을 도려내듯 악의 근원을 제거하는 심판이라는 과정을 선택하셨습니다.

결국 심판의 목적지는 '멸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에 있습니다. 낡고 병든 조직을 제거해야만 새살이 돋아날 수 있듯이, 죄로 오염된 옛 질서를 심판이라는 도구로 정돈함으로써 비로소 고통과 눈물이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설 자리가 마련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요한계시록의 심판은 세상을 향한 분노의 표출이라기보다, 피조물을 끝내 살려내어 영원한 안식으로 인도하시려는 창조주의 '치열한 사랑'이자 '단호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인 요한계시록 15장은 바로 그 지점에 서 있습니다. 이제 인류 역사의 마지막 심판이라고 할 수 있는 '일곱 대접 재앙'이 쏟아지기 직전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긴박하고 두려운 순간에 뜻밖의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비명과 통곡이 아니라, 하늘을 울리는 웅장한 찬양 소리입니다.

우리는 고난이 닥치면 대개 그 고난 자체에 매몰됩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이 시련은 언제 끝날까?"라는 질문에 갇혀 버립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시선을 요구합니다. 심판의 구름 너머, 이미 승리를 선포하며 유리 바다 가에 서 있는 하늘 성가대의 모습을 보라고 초청합니다. 과연 그들은 어떻게 재앙의 폭풍 앞에서도 노래할 수 있었을까요? 오늘 우리는 그 찬양의 비밀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1절을 함께 보겠습니다.

1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사도 요한은 하늘에서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봅니다. 그것은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진 모습인데, 성경은 이를 가리켜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라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마치리로다'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합니다. 헬라어 원어적 의미로 이는 단순히 끝났다는 뜻을 넘어 '완성되었다'는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무분별한 파괴가 아닙니다. 그것은 죄로 뒤엉킨 세상을 정화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온전히 회복하시는 '거룩한 마침표'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 심판의 시작은 곧 회복의 서막입니다.

 

이어지는 2~3절에는 압도적인 광경이 펼쳐집니다.

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이르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등장합니다. 요한계시록 4장에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던 유리 바다는 평온하고 투명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바다에 ''이 섞여 있습니다.

이 불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의 불꽃인 동시에, 성도들이 이 땅에서 통과해온 연단과 고난의 불길을 상징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 불꽃 튀는 바다 가에 사람들이 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누구입니까?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짐승의 논리를 강요합니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양심쯤은 버려라", "숫자와 힘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신앙은 사치다"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주인공들은 그 유혹을 거절하고 어린 양의 길을 택했습니다. 그들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문고'가 들려 있습니다. 싸움은 하나님이 하셨고, 성도는 그분의 승리에 동참하여 노래할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최종 승리의 모습입니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의 제목은 두 가지입니다. 바로 '모세의 노래''어린 양의 노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뒤 애굽의 압제에서 벗어나 불렀던 노래가 모세의 노래라면,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부르는 노래가 어린 양의 노래입니다. 가사를 보십시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이 노래에는 인간의 공로나 자랑이 단 한 줄도 섞여 있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거룩하심만이 선포됩니다. 만국의 왕이신 주님 앞에 모든 민족이 와서 경배하게 될 그 날을 소망하며 부르는 이 노래는, 오늘을 견디는 성도의 유일한 힘입니다.

 

그렇다면 이 성도들의 노래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까?

4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어느 미술관에 수백 년간 먼지와 덧칠로 오염되어 형체를 알 수 없게 된 명화가 하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그림을 보며 "지저분하다", "가치가 없다"며 손가락질했습니다.

이때 최고의 복원 전문가가 나타나 날카로운 도구와 화학 약품을 사용해 그림의 표면을 긁어내기 시작합니다. 멀리서 보던 관객들은 "저 귀한 그림을 망치고 있다"며 화를 내고 복원가를 비난했습니다. 하지만 복원 작업이 끝나고 마지막 먼지까지 닦아내자, 그 아래에 숨겨져 있던 찬란한 색채와 거장의 필치가 완벽하게 드러났습니다.

그제야 비난하던 모든 관객은 복원가의 탁월한 기술과 안목 앞에 고개를 숙이며 이렇게 외칩니다. "당신의 방법이 옳았습니다! 과연 당신만이 이 그림의 진 가치를 알고 계셨군요."

그렇습니다. 결국 4절의 이 찬양은 "하나님, 당신이 하신 일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옳았습니다!"라는 피조물들의 최종적인 고백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이 하늘의 환상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첫째로, 우리는 '미리 앞당긴 찬양'의 신비를 배워야 합니다. 본문의 성도들은 대접 재앙이 다 끝난 뒤에 노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재앙이 시작되려는 찰나에 이미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란 결론을 알고 과정을 견디는 것입니다. 운동경기를 녹화 중계로 볼 때, 우리 팀이 이겼다는 사실을 알면 경기 도중 실점을 해도 당황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의 끝에서 우리는 반드시 유리 바다 가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내 삶에 불 섞인 시련이 닥치더라도, 우리는 미리 감사하고 미리 찬양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이기는 자'의 정체성을 회복하십시오. 본문은 이들이 짐승을 "이겼다"고 선언합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요한계시록의 수신자였던 초기 교회 성도들은 패배자처럼 보였습니다. 사자 굴에 던져지고, 재산을 몰수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늘의 관점은 다릅니다. 진리에 타협하지 않은 자, 고난 속에서도 어린 양을 따른 자가 진짜 승리자입니다. 지금 여러분을 괴롭히는 결핍이나 질병, 혹은 관계의 아픔이 여러분의 실패를 증명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여전히 주님을 신뢰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이미 이기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5장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너의 거문고는 어디에 있느냐?" 근심의 무게 때문에 기도의 줄을 놓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상황의 엄중함 때문에 하나님의 크심을 잊어버리지는 않았습니까?

심판의 폭풍은 반드시 지나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와 그분을 향한 우리의 노래는 영원할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의 일터를, 가정을, 그리고 고독한 골방을 '찬양의 유리 바다'로 만드십시오. 세상의 소음에 귀를 닫고, 하늘에서 들려오는 어린 양의 노래에 여러분의 목소리를 합하십시오. 우리는 결국 이길 것이며, 주님의 의로우심은 온 천하에 드러날 것입니다. 이 영광스러운 소망이 여러분의 삶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는 거친 파도가 치는 세상 속에서도 유리 바다 가에 울려 퍼지는 하늘의 승전가를 듣습니다.

주님, 인생의 불 시험을 통과하고 있는 사랑하는 성도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당장 눈앞에 닥친 재앙 같은 현실 때문에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그 너머에서 승리의 거문고를 예비하고 계신 주님의 손길을 보게 하옵소서. 세상의 가치관과 타협하지 않고 짐승의 유혹을 이겨낸 자들에게 주시는 그 하늘의 위로가 오늘 우리 영혼에 가득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입술에서 원망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행하심이 크고 놀라우시다는 고백이 터져 나오게 하옵소서. 고난의 한복판에서도 미리 승리를 노래하는 믿음의 거장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셔서 승리의 길을 열어주신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