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선교교회
우리 입술에 맺히는 부활의 열매 (히 13:15 주일예배 20260426) 본문
성경본문: 히브리서 13:15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설교 제목: 우리 입술에 맺히는 부활의 열매
성도 여러분, 지난 한 주간 여러분의 입술에서는 어떤 말이 가장 많이 흘러나왔습니까? "힘들다", "못 해먹겠다", "내 팔자가 왜 이럴까" 하는 깊은 한숨이었습니까, 아니면 "그래도 감사합니다" 하는 고백이었습니까?
우리는 매일 반복되는 고된 일상 속에서 입술의 주도권을 잃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환경이 어려우면 말도 거칠어지고, 상황이 꼬이면 불평이 먼저 튀어나오는 것이 우리네 인지상정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아주 특별한 명령을 내립니다.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상황이 좋을 때만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소음 속에서도, 눈물 젖은 빵을 먹는 순간에도 '제사'를 드리듯 찬송하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으로 그 답을 함께 찾아보겠습니다.
오늘의 말씀입니다. 히브리서 13장 15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여기서 제가 최근에 경험한 은혜로운 이야기 하나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요즘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모 대형 마트가 입점 업체들에게 대금을 제때 지급하지 못해 자영업자분들이 큰 고통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셨을 겁니다.
제가 부모님을 모시고 자주 가는 식당이 있는데, 그곳 사장님도 상황이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제가 식당에 들어서는데 연세 지긋하신 사장님이 저를 보더니 "목사님!" 하고 반갑게 달려오시는 겁니다. 제가 어딜 봐서 목사처럼 보입니까? 이단들이 찾아와도 "목사님 안 계십니다" 하면 그냥 돌아갈 정도인데 말입니다. (웃음) 참 놀라운 일이었지요.
사장님은 제게 꼭 하고 싶은 간증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젊은 시절 교회에 충성하며 봉사하는 게 인생의 낙이었는데, 결혼 후 돈을 벌기 위해 장사를 시작하며 하나님과 멀어지셨답니다. 사업은 승승장구했고 몇 년 전 큰 꿈을 안고 대형 마트에 입점하셨죠. 하지만 본인의 잘못이 아닌 외부의 경영 위기로 카드 수익금을 제때 받지 못하게 되자, 망하기 일보 직전의 위기 앞에서 극심한 스트레스와 충격에 빠지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방에서 일하시는데 갑자기 기도가 터져 나왔답니다. 그 자리에서 엉엉 울며 하나님께 매달렸는데, 신기하게도 그 무거웠던 마음이 씻은 듯 가벼워지더니 온몸에 생수가 넘쳐나듯 힘이 솟구쳤다고 합니다. 그날 이후 사장님의 입술에서는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 때마다 찬송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주변 상인들이 "이 시국에 뭐가 그리 좋아서 흥얼거리냐"고 물을 정도였지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재난 같은 상황이었지만, 하나님을 다시 찾은 기쁨과 그 안에서 누리는 행복이 환경을 압도해 버린 것입니다. 놀랍게도 다른 지점들이 문을 닫는 와중에도 사장님이 계신 송도점은 여전히 건재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들으며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지치고 힘든 사역을 이어가는 저에게 하나님께서 사장님의 입술을 통해 주신 확신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제가 아이들만 가르치는 줄 아시지만, 저는 날마다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세상을 쫓는 성도님들의 뒷모습을 보며 '저러면 큰일 나는데, 하나님 도와주십시오!'라고 속으로 외치며 기도합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사신 귀한 영혼들이기에, 제가 감히 판단하는 대신 오직 기도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수많은 사람 중 우리 온누리선교교회로 보내주신 여러분 한 분 한 분을 반드시 깨닫게 하시고, 끝까지 책임져 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 본문의 가장 중요한 열쇠는 "예수로 말미암아"라는 구절에 있습니다. 우리가 찬송할 수 있는 이유는 내 형편이 나아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 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구약의 복잡한 짐승 제사 대신,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입술의 제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고 선포합니다. 구약의 제사는 제물이 죽어야 끝났지만, 우리의 제사는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 때문에 '산 제사'가 되었습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드린다는 것은, 내 감정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이루신 승리에 뿌리를 박고 노래한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삶에 현장에서 살다보면 내 뜻대로 안 되는 일이 태반입니다. 그때 우리는 내 감정의 노예가 되어 입술로 죄를 짓기 쉽습니다. 하지만 부활의 주님을 믿는 사람은 그 순간 '예수님'이라는 필터를 사용합니다. "비록 지금은 현장이 거칠고 몸은 고되지만, 예수님이 나를 위해 승리하셨으니 나는 절망하지 않겠다"고 결단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찬송의 제사'입니다.
본문은 찬송을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라고 표현합니다. 나무에 열매가 맺히기까지는 비바람을 견디고 뜨거운 태양을 견뎌야 합니다. 우리 입술의 찬송도 평탄할 때보다 시련의 계절을 통과할 때 더 진한 향기를 내뿜습니다.
여러분, 찬송은 상황이 바뀔 때 터져 나오는 결과물이 아니라, 상황을 바꾸기 위해 우리가 먼저 드려야 할 영적 무기입니다. 우리가 입술을 열어 주님을 높일 때, 우리를 누르고 있던 어둠의 영들이 떠나가고 하늘의 평안이 임하게 됩니다.
마틴 린카르트(Martin Rinkart)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17세기 독일, 30년 전쟁과 페스트(흑사병)가 온 유럽을 휩쓸 때였습니다. 그가 사역하던 마을은 기근과 병마로 처참해졌고, 당시 마을의 다른 목사님들은 모두 세상을 떠나거나 피난을 떠나 그 혼자 남게 되었습니다.
린카르트 목사님은 하루에만 수십 구의 시신을 매장해야 했고, 그중에는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도저히 입을 열어 찬양할 수 없는, 저주와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참혹한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는 현장에서 펜을 들어 이렇게 적었습니다.
"다 감사세 온 맘을 바쳐서. 주님의 하신 일 크게 나타나도다.
몸과 맘 다 바쳐 주님을 찬양해. 주님의 큰 은혜 찬양할지어다."
그는 상황이 좋아서 감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죽음 너머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보았기에, 비극의 한복판에서 하나님께 '찬송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이 찬송은 지금까지도 전 세계 성도들에게 고난을 이기는 힘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린카르트 목사님의 상황보다 더 참혹할까요? 그가 드린 찬송의 제사가 오늘 우리의 입술에도 회복되기를 소망합니다.
본문은 "항상" 드리라고 말씀합니다. 교회 안에서만, 기분이 좋을 때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24시간 우리의 삶 전체가 찬송의 제단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부활절 하루만 살아계신 분이 아닙니다. 월요일의 일터의 현장에도, 화요일의 주방에도, 수요일의 사무실에도 그분은 살아 계십니다. '항상' 찬송한다는 것은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임을 끊임없이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비록 세상에서는 낮은 자의 모습으로 일하고 있을지라도, 입술로 주님을 찬양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제사장으로 서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악기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플루트'라는 악기를 아십니까? 이 플루트가 소리를 내는 원리는 참 묘합니다. 연주자가 악기에 입술을 대고 바람을 불어넣을 때, 그 공기가 플루트 몸통에 뚫려 있는 '구멍'들을 통과하며 아름다운 선율로 바뀝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플루트에 구멍이 하나도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무리 뛰어난 연주자가 바람을 불어넣어도, 그저 꽉 막힌 막대기처럼 답답한 소리만 날 뿐입니다. 플루트가 노래할 수 있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그 몸에 '텅 빈 구멍'들이 뚫려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낯선 땅에서 겪는 외로움, 자녀를 키우며 느끼는 한계, 끝이 보이지 않는 경제적 압박... 이런 것들은 우리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구멍 사이로 "하..." 하고 깊은 한숨을 내뱉습니다. 사람들은 그 구멍을 보며 "인생 망가졌다, 상처 입었다, 끝났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부활의 주님이 우리 인생의 연주자로 오시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주님은 우리가 가진 그 절망의 구멍, 허무의 구멍에 주님의 성령(Pneuma, 생기)을 불어넣으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내뱉었던 깊은 '한숨'이, 그 구멍을 통과하면서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고귀한 '찬송'으로 변하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가슴에 뚫린 구멍 때문에 고통스러우십니까? "왜 내 인생은 이렇게 구멍투성이일까"라며 한숨짓고 계십니까?
기억하십시오. 그 구멍은 여러분의 인생이 끝났다는 증거가 아니라, 이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찬양의 악기'로 쓰시겠다는 신호입니다. 여러분이 한숨 섞인 그 입술 그대로 "주님, 저는 힘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주님께 인생을 맡길 때, 하나님은 그 한숨의 바람을 이용해 가장 아름다운 '찬송의 제사'를 연주하기 시작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한숨은 더 이상 허무로 사라지는 공기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울려 퍼지게 하는 거룩한 노래가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입술은 한숨을 내뱉는 통로가 아니라, 부활의 주님을 자랑하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이번 한 주간, 삶의 현장에서 여러분의 입술에 '감사와 찬송'이라는 열매를 맺어보십시오.
거친 현장에서 일이 꼬일 때, 누군가 나를 비난할 때, 미래가 막막해 보일 때 더욱 크게 주님을 노래하십시오. 여러분의 찬송이 울려 퍼질 때, 주님은 여러분의 수고를 귀히 여기시고 하늘의 위로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내 입술의 모든 말과 내 마음의 묵상이 주께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라는 시편의 고백처럼, 여러분의 일주일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향기로운 제사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찬송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심에 감사합니다.
우리의 입술이 원망과 시기, 불평의 도구가 되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님의 이름을 증언하는 열매가 맺히게 하옵소서.
현장에서 흘리는 땀방울 속에 찬송의 곡조를 실어 보내게 하시고,
우리의 작은 고백을 통해 세상이 주님의 살아계심을 보게 하옵소서.
지친 성도들의 영혼에 부활의 기쁨을 회복시켜 주셔서,
어떤 환경에서도 "항상" 주님을 노래하는 승리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온누리선교교회 > 한국어예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요한계시록 강해 39) 유리 바다 위에서 부르는 미리 앞당긴 노래 (수요기도회 20260429) (1) | 2026.04.29 |
|---|---|
| 요한계시록 38) 알곡과 포도송이의 갈림길 (수요기도회 20260422) (0) | 2026.04.22 |
| 우리가 확신하는 부활 (고전 15:57-58 주일예배 20260419) (0) | 2026.04.18 |
| 요한계시록 강해 37) 심판의 시간과 성도의 복 (수요기도회 20260415) (1) | 2026.04.15 |
| 왜 우리는 부활을 믿어야 하는가 (벧전 1:3-4 주일예배 20260412) (1) | 2026.04.1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