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선교교회
우리가 확신하는 부활 (고전 15:57-58 주일예배 20260419) 본문

성경본문: 고린도전서 15:57-58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알음이라
설교 제목: 우리가 확신하는 부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우리는 몇 주 전 부활절을 지내며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우리 모두의 가슴을 뜨겁게 했습니다. 그런데 그러고 난 뒤 오늘, 여러분의 삶은 어떠하십니까?
우리는 다시 '현실'이라는 거친 바다로 돌아왔습니다. 월요일 아침이 되자마자 들려오는 것은 천사의 찬송 소리가 아니라 스트레스를 받는 소리였고, 우리를 맞이한 것은 빈 무덤의 영광이 아니라 채워지지 않는 통장 잔고와 산더미처럼 쌓인 업무, 그리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인간관계의 숙제들이었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세상은 냉소적으로 묻습니다. "예수가 부활한 게 당장 내 일당과 무슨 상관이냐?" 이 질문 앞에 우리는 때로 할 말을 잃곤 합니다. 믿음은 하늘에 있는데, 발은 진흙탕 같은 현실에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고민을 하는 우리에게 오늘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어머니의 태중에 쌍둥이가 있었습니다. 두 아기는 엄마의 따뜻한 보호 속에서 평화롭게 자라나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한 아기가 다른 아기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출산 후의 삶이 있다고 믿니?"
그러자 다른 아기가 비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당연히 아니지. 여기가 우리 세계의 전부야. 따뜻하고, 안전하고, 필요한 건 다 탯줄로 공급받잖아. 여기서 나가면 뭐가 있겠어? 여기서 나가는 건 곧 죽음을 의미해. 너, 나갔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 본 적 있어? 없지? 그러니까 그런 헛소리는 하지 마."
하지만 믿음이 있었던 첫 번째 아기는 포기하지 않고 말했습니다. "아니야, 분명 여기보다 더 넓고 밝은 세상이 있을 거야. 거기선 우리 발로 직접 걷기도 하고, 입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기도 한대.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엄마'를 직접 만나게 될 거야."
두 번째 아기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엄마? 하하! 너 엄마를 본 적 있어? 엄마가 어딨는데? 엄마가 있다면 왜 우리 눈에 안 보여? 우리는 그저 이 좁은 공간에서 살다가 사라지는 존재일 뿐이야."
첫 번째 아기는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지금은 볼 수 없지만, 우리가 귀를 기울이면 엄마의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어. 그리고 우리가 태어나는 그날, 우리는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세상에서 진짜 삶을 시작하게 될 거야."
성도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뱃속의 두 번째 아기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부활을 확신하는 우리는 압니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고단한 현장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거룩한 준비 과정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오늘 본문인 고린도전서 15장은 이른바 '부활장'의 결론입니다. 이 결론을 통해 우리가 왜 흔들리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야 하는지 그 영적인 근거를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57절 함께 보겠습니다.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 짧은 한 구절에는 기독교 신앙의 정수가 담겨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바울이 사용한 '승리' 라는 단어와 그 시제입니다.
바울 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아 '몸의 부활'을 의심했습니다. "죽으면 끝이지, 어떻게 썩은 몸이 다시 사느냐"는 회의론이 팽배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15장 내내 논증합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고 우리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57절에서 '승리'를 선포합니다. 여기서 '승리를 주시는'은 헬라어 원어로 현재 분사형입니다. 즉, 단 한 번의 과거 사건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속해서 승리를 공급하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사망의 독침, 즉 우리를 정죄하고 죽음의 공포로 몰아넣는 죄의 권세는 이미 십자가와 부활로 꺾였습니다.
우리의 일터는 전쟁터와 같습니다. 때로는 경제적 결핍에 패배한 것 같고, 때로는 인간관계의 갈등에 무너진 것 같습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너는 실패했다, 너는 끝났다"라고 사형 선고를 내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의 대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승리하셨습니다.
우리는 승리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얻은 '승리 안에서' 싸우는 사람들입니다. 축구 경기를 녹화 중계로 본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팀이 3대 0으로 이긴다는 결과를 이미 알고 있다면, 중간에 상대 팀이 거칠게 반격해와도 가슴 졸이지 않습니다. 여유 있게 경기를 관람할 수 있습니다.
부활 신앙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오늘 당장 내 수중에 돈이 없고, 몸이 아프고, 현장에서 무시를 당해도 우리는 당당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미 '최종 승리'라는 성적표를 쥐여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확신이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환경을 압도하는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58절입니다.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알음이라
58절 상반절은 우리에게 구체적인 삶의 자세를 명령합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바울은 왜 하필 '견실함'과 '흔들리지 않음'을 강조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끊임없이 우리를 흔들어대기 때문입니다.
'견실하다'는 뜻의 헬라어 '헤드라이오스'는 '좌석에 단단히 앉아 있다' 혹은 '기초가 견고하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흔들리지 말라'는 뜻의 '아메타키네토스'는 '외부의 힘에 의해 옮겨지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내부적인 파당 싸움과 외부의 이단 사상 때문에 몹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마치 파도에 요동치는 배와 같았죠. 바울은 그들에게 말합니다. "부활이라는 닻을 내리십시오. 그러면 어떤 풍랑이 와도 여러분의 인생 배는 뒤집히지 않습니다."
여러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들을 보십시오. 높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바람의 영향은 엄청납니다. 꼭대기 층은 실제로 몇 미터씩 흔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빌딩이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지상에 드러난 높이만큼이나 깊고 단단하게 박힌 '기초' 때문입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활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은 작은 소문에도 흔들리고, 통장 잔고가 줄어들면 신앙까지 통째로 흔들립니다. 하지만 부활이라는 단단한 암반 위에 인생의 기초를 둔 사람은 다릅니다. 고난이 오면 잠시 휘청일 수는 있으나, 결코 뿌리가 뽑히지는 않습니다.
"내가 오늘 이 고생을 하지만, 이것이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예비하신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과 영원한 나라가 있다!" 이 확신이 우리를 견실하게 만듭니다.
설교의 마지막 핵심은 58절 하반절에 있습니다.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알음이라."
우리를 가장 절망하게 하는 단어는 '헛되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바울은 선포합니다. "주 안에서 너희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다!" 왜입니까?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의 평범한 일상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여러분의 하루는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을 향해 쌓여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때 어깨를 펴십시오. 여러분은 이미 승리한 자들입니다. 여러분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승리를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합니다.
오늘 말씀을 받은 우리 성도들이 세상의 거친 파도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인생의 닻을 내리게 하옵소서.
주 안에서의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다는 부활의 약속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우리 성도들이 일터에서 흘리는 땀방울을 귀히 여겨 주시고, 그들의 손길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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