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선교교회
하늘을 보라. 그리고 땅으로 가라 (행전 1:6-9 주일예배 20260517) 본문
성경본문: 사도행전 1:6-9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 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려 보이지 않게 하더라

설교제목: 하늘을 보라, 그리고 땅으로 가라
오늘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40일 만에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리워 가신 '승천일'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사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승천일은 우리에게 조금은 애매한 날입니다. 성탄절처럼 설레는 것도 아니고, 부활절처럼 극적인 반전이 느껴지지도 않죠. 어떤 면에서는 '예수님이 우리를 떠나신 날'처럼 느껴져서 섭섭하기까지 합니다.
본문 9절을 보면 제자들이 하늘로 올라가시는 예수님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습니다.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그 뒷모습을 보며 제자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이제 우리는 어떡하지?", "로마는 언제 무너뜨려 주시는 거지?" 아마도 당혹감과 상실감이 교차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비슷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자주 "하늘"만 쳐다봅니다. 여기서 하늘이란 '나의 문제가 해결되는 기적', '언젠가 갈 천국', '현실의 고통을 잊게 해줄 초월적인 힘'을 의미하죠. 하지만 오늘 예수님은 그 멍한 시선을 땅으로 돌리게 하십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처럼, 우리가 왜 하늘을 보아야 하는지, 그리고 왜 반드시 다시 땅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6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니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는 질문을 잘 생각해봅시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이 엄청난 타이밍에 드디어 자신들의 고생이 끝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주님, 이제 로마 사람들을 다 몰아내고 우리 나라를 다시 세워주실 때가 지금인가요?"라고 묻습니다.
이 질문을 오늘날 우리의 언어로 솔직하게 번역해본다면 어떨까요? 아마도 "예수님, 이제 제 고생도 끝인가요? 비자 문제도 해결되고, 돈도 많이 벌어서 남들 보란 듯이 떵떵거리며 살게 해주시는 게 바로 지금인가요?"라는 물음과 같을 것입니다.
우리는 낯선 환경 속에서 불안함을 느낄 때마다 '언제쯤 내 인생이 풀릴까'라는 생각에 온 마음을 빼앗기곤 합니다.
"하나님, 제 사업이 대박 나는 게 도대체 언제입니까?", "우리 아이들이 한국 학교에서 1등을 하고 성공하는 게 이번 학기인가요?"라며 자꾸만 '결과'와 '날짜'를 독촉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기도는 하나님을 사랑해서라기보다, 사실 내 힘든 처지를 보상받고 싶은 마음이 더 커서일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마치 시험 점수나 월급 날짜만 기다리는 사람처럼, 하나님이 주실 '선물'에만 집착한 나머지 '선물을 주시는 분'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빌려 로마라는 거대한 벽을 무너뜨리고, 보란 듯이 높은 자리에 앉아 '성공한 인생'이 되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그 시간은 너희가 알 바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며 찬물을 끼얹으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언제 성공할지, 언제 문제가 해결될지에 너무 목매지 마라"는 따뜻한 조언이기도 합니다. 대신 예수님은 우리가 '지금, 여기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에 더 관심을 가지길 원하십니다.
진정한 신앙은 내 인생의 스케줄표를 하나님께 보여주며 "이대로 해주세요"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그려가시는 더 큰 그림을 믿고, 오늘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성실하고 당당하게 살아내는 것입니다.
비자가 늦게 나올 수도 있고, 당장 형편이 나아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시간을 견뎌낼 '권능'을 구하는 것이 진짜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미래라는 안개에 갇혀 오늘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성공이라는 '결과'에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의 향기를 전하는 '증인'으로 살아가기를 응원하고 계십니다.
이어서 7~8절에서 보면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신경 꺼라"는 무책임한 말씀이 아닙니다. 우선순위를 바꾸라는 경고입니다. 우리는 미래의 스케줄표를 미리 보고 싶어 하지만,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에 집중하길 원하십니다.
전형적인 기독교인은 '언제 복을 주실까'를 고민하며 하늘을 보지만,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기 위해 하늘을 봅니다. 여러분, 신앙은 내 미래를 점치는 도구가 아닙니다. 신앙은 내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을 살아낼 용기를 얻는 것입니다.
그래서 8절에서 보면 예수님은 '시기'에 대한 답변 대신 '성령'과 '권능'을 약속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오해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권능(Dunamis)'을 마치 슈퍼맨 같은 힘으로 생각합니다. 병을 고치고, 방언을 하고, 남들보다 앞서가는 힘 말이죠. 하지만 사도행전이 보여주는 진짜 권능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안경을 써본 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안경에 지문이 묻거나 먼지가 가득 끼면 앞이 뿌옇게 보여서 정말 답답하죠. 그럴 때 우리는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안경을 벗어 깨끗한 수건으로 닦아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안경을 닦는 그 짧은 순간이 세상을 안 보겠다고 외면하는 시간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다시 안경을 썼을 때 세상을 더 맑고 정확하게 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멈춤'의 시간이죠.
우리 인생도 이와 똑같습니다. 타국에서 이주민으로 살아가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우리 마음의 안경에는 금방 '세상의 먼지'가 쌓입니다. "돈이 최고야", "성공해야 무시 안 당해", "나만 잘살면 돼" 같은 생각들이 우리 눈을 흐리게 만듭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시며 "하늘을 보라"고 하신 이유는, 바로 이 더러워진 마음의 안경을 닦아주기 위해서입니다. 하늘을 바라본다는 것은 현실을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인 사랑과 정의, 그리고 희생이라는 깨끗한 수건으로 우리 시야를 다시 교정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의 '권능' 혹은 '힘'이라는 것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 힘은 내가 남들보다 더 잘나서 나를 증명하거나, 엄청난 부자가 되어 내 능력을 과시하는 힘이 아닙니다.
진짜 권능은 세상의 기준과는 정반대로 움직일 때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당장 손해를 볼 게 뻔한 상황에서도 거짓말하지 않고 정직하게 행동하는 힘, 나를 무시하거나 상처 준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먼저 용서하는 힘,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고생하는 동료나 이웃을 묵묵히 돕는 힘이 바로 성령이 주시는 진짜 파워입니다.
우리가 이런 삶을 살 때, 세상 사람들은 우리를 보며 "저 사람은 뭐가 다르지? 저 사람 안에 정말 예수님이 살아계신가 봐"라고 느끼게 됩니다.
승천하신 예수님은 우리가 높은 곳에서 군림하는 영웅이 되길 원치 않으십니다. 대신, 비록 낯선 땅에서 힘들게 살아갈지라도 하늘의 마음으로 눈을 맑게 닦고, 각자의 일터와 가정에서 '예수님이라면 이렇게 하셨을 거야'라는 것을 삶으로 보여주는 작은 영웅들이 되길 원하십니다.
거울은 나만 비춥니다. 하지만 창문은 밖을 보게 합니다. 승천을 바라보는 우리의 신앙이 나 자신의 복만 구하는 '거울'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제는 세상을 향해 열린 '창문'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번 한 주간 과감하게 하늘을 보십시오. 세상이 주는 두려움에 압도될 때마다 고개를 들어 하늘 보좌에 앉으신 통치자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그분으로부터 내려오는 평안과 권능을 충전하십시오.
그리고 곧장 땅으로 내려가십시오. 여러분이 발을 딛는 그곳이 아무리 척박할지라도, 여러분이 하늘의 시선을 가지고 그곳을 걸어갈 때, 그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셔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십니다. 하늘 문을 여시고 성령의 권능을 우리에게 쏟아부어 주고 계십니다. 이제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던 제자들이 땅으로 내려가 세상을 뒤집어 놓았듯이, 우리도 삶의 현장으로 내려갑시다. "주님, 내 삶의 자리가 주님의 통치가 임하는 땅끝이 되게 하소서!" 이 결단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 아버지,
부활과 승천의 기적으로 우리에게 참된 소망을 주신 전능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제자들처럼 내 문제에만 갇혀 "언제쯤 내 뜻대로 해주실 거냐"며 보채던 욕심을 내려놓습니다.
이제는 땅만 보던 눈을 들어, 하늘 보좌에서 우리를 다스리시는 주님의 시선을 배우게 하옵소서.
성령의 권능으로 나를 증명하려 애쓰지 않고, 내가 손해 보더라도 예수님을 증명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우리가 발 딛는 고된 일터와 가정이 주님이 보내신 땅임을 기억하며, 사랑의 향기를 전하게 하옵소서.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어떤 막막한 현실 앞에서도 오늘을 기쁘게 견디며 승리하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우리와 함께 걷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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