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ice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   2026/08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온누리선교교회

성령강림주일) 내 인생의 가장 든든한 피스메이커, 성령님 (요 14:!6-17, 주일예배 20260524) 본문

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성령강림주일) 내 인생의 가장 든든한 피스메이커, 성령님 (요 14:!6-17, 주일예배 20260524)

온누리선교교회 2026. 5. 23. 21:00

성경본문:요한복음 14:1617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면, 아버지께서 나를 대신하여 너희를 도와주실 성령을 보내실 것이다. 그러면 그분이 너희와 영원히 함께 계실 것이다.

17 그분은 진리를 알려 주는 영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너희는 그분을 안다. 그분은 지금도 너희와 함께 살고 계시며, 앞으로도 너희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설교제목: 내 인생의 가장 든든한 피스메이커, 성령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오늘은 교회력에서 가장 기쁘고 든든한 날인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여러분, 혹시 이런 경험 있으십니까? 사람이 꽉 찬 만원 지하철 안에서, 혹은 화려한 도심의 불빛 속에서 문득 ‘이 넓은 세상에 결국 나 혼자뿐이구나’ 하는 지독한 외로움을 느껴 본 적이 말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부모가 있고 가정이 있어도 늘 마음 한구석이 허전한 현대적 고아의식’을 갖고 살아갑니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아무도 내 편이 되어 주지 않을 거야"라는 불안감이죠.

오늘 성경에 나오는 제자들의 마음이 딱 그랬습니다. 3년 동안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던 스승 예수님이 갑자기 떠나신다고 합니다.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단순한 스승이 아니라 삶의 전부이자, 비바람을 막아주는 강력한 울타리였습니다. 그런데 그 울타리가 사라진다니, 마치 놀이공원에서 부모의 손을 놓쳐버린 아이처럼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며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바로 그 떨고 있는 제자들을 향해, 그리고 오늘날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을 향해 예수님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약속을 들려주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4:16)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 곁에 오신 성령님이 누구이시며 그분이 왜 우리 믿음의 근거가 되시는지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또 다른 보혜사: 예수님의 '완벽한 아바타'이자 전담 변호사

예수님은 성령님을 소개하시면서 또 다른 보혜사라는 독특한 표현을 쓰셨습니다. 여기에 기가 막힌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헬라어에서 다른을 뜻하는 단어는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모양도 질도 아예 다른 것(Heteros)*을 말하고, *다른 하나는 모양과 성질이 완전히 똑같은데 하나 더 추가된 것(Allos)*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여기서 완전히 똑같은 것을 뜻하는 알로스(Allos)’를 쓰셨습니다.

쉽게 말해 이런 뜻입니다.

"내가 너희를 안아주고, 눈물을 닦아주고, 하늘의 비밀을 알려주었던 것과 100% 똑같은 사랑과 능력을 가진 분을 한 분 더 보내주겠다. 그분이 바로 성령이다!"

그렇다면 보혜사는 무슨 뜻일까요? 원어로 파라클레토스라고 하는데, 이는 당시 법정에서 쓰던 말로 내 곁에서 나를 도와주는 전문 변호사를 의미합니다.

예화 이야기

만약 여러분이 억울한 일로 법정에 서게 되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상대방은 나를 무섭게 공격하는데, 내 옆에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능하고 날카로운 최고의 변호사가 딱 버티고 서서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다 알아서 합니다"라고 한다면 마음이 어떠시겠습니까? 든든함 그 자체일 것입니다.

성령님이 바로 그런 분입니다. 성령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신비한 에너지나 뜨거운 불덩어리 같은 현상이 아닙니다. 우리와 똑같이 감정을 느끼시고 대화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2천 년 전 예수님은 몸을 입고 계셨기에 이스라엘이라는 공간에 갇혀 계셨지만, 이제 성령님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지금 바로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의 전담 변호사로 와 계십니다.

낙심하여 한숨 지을 때, 세상의 비난 앞에 위축될 때, 성령님은 여러분의 마음속에 속삭이십니다. "성진아(성도님의 이름), 내가 네 곁에 있다. 내가 네 억울함을 안다. 내가 너를 변호하마." 이 든든한 변호사를 믿는 믿음이 오늘 여러분 안에 회복되기를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17절에서 예수님은 성령님을 진리의 영이라고 부르십니다. 17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17 그분은 진리를 알려 주는 영이시다.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너희는 그분을 안다. 그분은 지금도 너희와 함께 살고 계시며, 앞으로도 너희 안에 계실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뭐가 진짜인지 모르는탈진실의 시대입니다. 유튜브를 켜도, 뉴스를 봐도 저마다 자기가 옳다고 소리를 높입니다. 내가 믿고 싶은 것이 진리가 되는 세상입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자주 길을 잃습니다. "어떻게 사는 게 바른 길일까? 이 선택이 정말 하나님의 뜻일까?" 늘 흔들립니다.

이때 성령님이 하시는 결정적인 역할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영적 내비게이션이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처음 가 보는 낯선 초행길, 게다가 폭우가 쏟아지고 안개가 자욱해서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밤길을 운전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불안합니까? 하지만 차에 장착된 최신형 내비게이션이 "300m 앞 우회전입니다", "이 길은 위험하니 돌아가십시오"라고 정확히 안내해 주면 우리는 안심하고 운전대를 잡을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바로 우리 인생의 내비게이션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돈, 통장 잔고, 세상적인 성공만 보고 달리기 때문에 이 보이지 않는 내비게이션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성령을 모신 우리는 다릅니다. 인생의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내비게이션이신 성령님은 우리 마음에 거룩한 신호를 보내십니다. 잘못된 길을 가려고 하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시고(경고음), 바른 길을 갈 때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함(안내음)을 주십니다. 생각이 복잡하고 결정이 어려울 때, 조용히 내 안의 진리의 영께 물으십시오. 그분은 반드시 말씀의 등불을 켜서 여러분의 앞길을 안내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가장 놀라운 하이라이트는 17절의 끝부분입니다.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여기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With)’ 계시는 단계를 넘어, 우리 속에(In)’ 거주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의 성령님은 왕이나 선지자 같은 특별한 사람에게 필요할 때만 잠시 임하셨다가, 사역이 끝나면 떠나시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죄를 지은 후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라고 처절하게 빌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를 사는 우리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축복이 주어졌습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아예 이사를 오셔서 집을 지으시고(Settling down), 영원히 떠나지 않으십니다!

 

과거의 성령님이 공공 와이파이(Wi-Fi)’ 같았다고 비유해 볼까요? 와이파이는 공유기가 있는 특정 장소(성전)에 가야만 터지고, 그 자리를 벗어나면 뚝 끊겨버립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안의 성령님은 내 몸속에 칩이 심겨 있는 무제한 5G 데이터 요금제와 같습니다. 지하실에 가든, 비행기를 타든, 지구 반대편에 가든 절대 끊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왜 우리에게 위로가 됩니까?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특별한 기도원이나 거룩한 건물로만 달려갈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자신이 걸어 다니는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외치고 낙심합니다.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왜 내 고통에 침묵하십니까?" 그때 주님은 먼 하늘이 아니라, 바로 여러분의 마음 중심에서 대답하십니다. "나는 멀리 있지 않다. 바로 네 안에서 너와 함께 숨 쉬고 있다." 이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신뢰할 때, 우리는 비로소 외로운 고아의 옷을 벗고 하나님의 당당한 자녀로 다시 설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절대 혼자가 아닙니다. 내 편이 하나도 없는 것 같은 세상 속에서, 예수님과 똑같은 사랑을 가지신 성령님이 지금 여러분 안에 살고 계십니다.

이 성령님을 정말 믿고 그분의 능력을 경험하며 살기 위해, 이번 한 주간 딱 세 가지만 기억합시다.

운전대를 넘겨드리십시오!

성령님을 차 뒷자리에 앉은 손님처럼 대하지 마십시오. 아침에 눈을 뜰 때 "성령님, 오늘 내 생각과 입술의 운전대를 잡아주십시오"라고 주권을 양도하십시오.

말씀의 채널을 켜십시오!

성령님은 말씀의 주파수를 타고 일하십니다. 매일 아침 전해지는 매일성경 말씀(QT)을 통해 들려주시는 세밀한 음성에 ", 알겠습니다" 하고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순종해 보십시오.

내 이웃에게 흘려보내십시오!

성령의 은혜는 고인 물처럼 내 안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내 주변의 소외된 이웃, 위로가 필요한 가족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넬 때, 내 안의 성령님은 다이내믹하게 일하기 시작하십니다.

세상은 우리를 조건과 스펙으로 판단하지만, 성령님은 우리의 존재 자체를 사랑하십니다. 세상은 쓸모없으면 우리를 버리지만, 성령님은 영원히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 다시한번 봅시다. 16절 말씀입니다.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면, 아버지께서 나를 대신하여 너희를 도와주실 성령을 보내실 것이다. 그러면 그분이 너희와 영원히 함께 계실 것이다.

 

이 말씀에 응하여 지금 우리 마음의 빗장을 열고 함께 고백합시다.

"오소서 성령님, 내 안의 두려움을 몰아내 주소서. 내 마음의 내비게이션이 되어 주소서. 주님이 주시는 하늘의 평안으로 내가 다시 일어서겠나이다."

이 믿음의 고백 위에 성령의 위로와 능력이 임하여, 여러분의 가정이 살아나고, 일터가 변하며, 우리 온누리선교교회가 이 시대를 치유하는 거룩한 통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진리의 아버지 하나님, 오늘도 우리를 예배의 자리로 불러주시고 성령님으로 함께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지치고 낙심했던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혼란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른 길을 걷게 하옵소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의 임재를 날마다 더욱 깊이 경험하게 하시고, 우리의 삶이 거룩한 예배가 되게 하옵소서.

슬픔은 찬송으로 바꾸시고, 연약함은 복음을 향한 열정으로 변화시켜 주시기를 원합니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세상 가운데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시고, 우리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사랑이 전해지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보혜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