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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가지 맛을 가진 성령의 열매 (갈 5:22-23 주일예배 20260531) 본문

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아홉가지 맛을 가진 성령의 열매 (갈 5:22-23 주일예배 20260531)

온누리선교교회 2026. 5. 30. 00:52

 

 

성경본문: 갈라디아서  5:22-23

22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함, 신실,

23 온유,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금하는 법은 없습니다 

 

설교제목: 아홉가지 맛을 가진 성령의 열매

 

사랑하는 온누리선교교회 성도 여러분, 한 주간 동안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평안하셨습니까? 이 자리에 모인 성도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의 평강이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말씀으로 들어가기 전, 여러분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조화(가짜 꽃)'를 자세히 관찰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서 멀리서 보면 진짜 생화보다 훨씬 색이 선명하고 화려합니다. 시들지도 않고 벌레도 꼬이지 않으며 관리하기도 너무나 쉽습니다. 겉으로만 보면 완벽해 보이는 꽃입니다.

그러나 그 완벽해 보이는 꽃 앞에 가까이 다가가 코를 대보면 우리는 결정적인 결핍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꽃에는 생명이 없기에 아무런 '향기'가 없고, 시간이 흘러도 결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같을 수 있습니다. 교회 예배에 나오고 가족들도 함께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우리의 삶의 현장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쩌면 화려한 조화와 같은 종교인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의 영혼을 향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성령의 힘으로 익어가는 진짜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아니면 당신의 의지로 만든 가짜 꽃을 꽂아두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참된 답을 찾고 영혼이 새로워지는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2~23절의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22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함, 신실,

23 온유,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금하는 법은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갈라디아서 522절은 사랑부터 절제까지 아홉 가지의 아름다운 성품을 나열합니다. 우리는 흔히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라고 말하며 이것을 각기 다른 아홉 개의 열매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성경의 원래 언어인 헬라어 원문을 보면 매우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이 사용한 '열매'라는 단어인 '카르포스(Karpos)'는 복수가 아니라 명확한 단수(Singular)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열매가 마치 오렌지 한 알 안에 아홉 개의 알맹이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온전한 과일을 이루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함, 신실, 온유, 절제는 서로 분리될 수 있는 별개의 덕목이 아닙니다. 성령 하나님이 한 사람의 내면을 완전히 다스리실 때, 그 인격 속에서 동시에 나타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여기에 우리의 깊은 공감을 자아내는, 한국 교회사와 사회가 모두 존경하는 한 사람의 실제 이야기가 있습니다. 평생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살아가며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렸던 장기려 박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당대 최고의 천재 의사이자 대학교수였지만, 정작 본인은 병원 옥상에 있는 작은 조립식 건물 한 칸에서 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분의 삶에는 도무지 세상 사람들의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로운 흔적들이 가득했습니다.

병원비가 없는 가난한 농부가 찾아와 눈물을 흘릴 때면, 박사님은 처방전에 "이 환자에게 닭 두 마리 값을 내어주시오"라고 적어 주며 영양을 보충하게 했습니다.

어느 날은 밤새 병원비를 내지 못해 고민하던 환자에게 슬그머니 다가가 "내가 밤에 뒷문을 열어놓을 테니, 간수들이 잠든 사이에 어서 도망치시오" 하며 자신의 돈으로 차비까지 쥐여주었습니다.

우리가 이 장기려 박사님의 일화를 보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나에게 닭고기를 처방해 준 의사, 밤에 뒷문을 열어 준 의사, 내 병을 고쳐 준 의사가 다 따로 존재하구나"라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그 모든 눈물겨운 행동과 따뜻한 모습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의 주인으로 모신 장기려라는 단 한 사람'의 인격에서 동시에 흘러나온 것입니다.

그분의 내면 깊은 곳에 성령님이 자리 잡고 계셨기에, 가난한 이들을 볼 때마다 가슴 아파하는 사랑이 있었고, 베풀면서도 오히려 행복해하는 기쁨(희락)이 있었습니다. 세상의 성공과 출세에 흔들리지 않는 깊은 평화(화평)가 있었으며, 거친 환자들을 대할 때도 끝까지 품어주는 인내(오래 참음)가 있었습니다.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친절(자비)과 선함(양선)이 있었고, 평생 의사로서의 사명을 지켜낸 신실함(충성)과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온유함, 그리고 자신의 욕망을 철저히 다스렸던 절제가 한 사람의 삶에 녹아있었던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셔서 우리를 다스리기 시작하시면, 하나님을 향하여 사랑과 기쁨과 평화가 속에서부터 샘솟듯 피어오릅니다. 동시에 그 사랑은 이웃을 향해 번져 나가 참아 주고, 친절을 베풀며, 선을 행하는 태도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기 자신을 향해 신실하고, 부드러우며, 스스로를 다스리는 절제를 형성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아름다운 성품의 열매를 우리는 어떻게 맺을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복음의 핵심 원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 바로 앞에서 육체의 '(Works)'과 성령의 '열매(Fruit)'를 극명하게 대조하여 설명합니다.

''은 사람이 공장에서 땀 흘려 물건을 만들어내듯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산출하는 결과물입니다. 그러나 '열매'는 나무가 스스로 몸을 짜내어 만드는 것이 아니라, 뿌리로부터 올라오는 생명력을 받아들일 때 자연스럽게 맺히는 것입니다. 사과나무가 사과를 맺기 위해 아침마다 스트레스를 받으며 끙끙대지 않는 것처럼, 나무가 좋은 땅에 뿌리를 깊이 박고 줄기에 제대로 붙어 있으면 때가 되어 저절로 열매가 열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5장에서 이 원리를 분명히 하셨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우리의 문제는 열매라는 결과물만 원하면서 정작 성령님과 '함께 시간 보내는 법'은 잊어버린 채 발버둥친다는 점입니다. 신앙생활은 내 힘으로 착해지려는 고행이 아니라, 생명의 공급원이신 예수님께 깊이 접붙여지는 '거함(Abiding)'의 훈련입니다.

우리가 매일 바쁘다고만 하지 말고, 일하기 전,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주님의 말씀으로 시작해 보십시오. 우리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마치 주문을 외우거나 해서 신비한 힘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더 깊이 붙어 있기 위함입니다.

여러분이 주님 안에 깊이 머무를 때, 여러분도 모르는 사이에 언어가 따뜻해지고, 판단이 온유해지며, 삶에 절제의 향기가 배어 나오게 될 것입니다. 열매는 인간의 노력이 아닌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자라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 23절 하반절의 선언을 보십시오. 바울은 아홉 가지 성품을 모두 나열한 뒤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결론을 맺습니다.

이 말씀에도 우리가 일상에서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은혜로운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어느 늦은 밤, 어린 자녀가 갑자기 고열로 신음하며 아플 때 밤을 새워 아이를 간호하는 어머니를 상상해 보십시오. 세상의 규칙은 "밤에는 잠을 자야 한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피곤함도 잊은 채 밤새도록 아이의 이마를 닦아내며 머리를 곁에 지킵니다.

다음 날 아침, 세상의 어떤 법이 그 어머니에게 "왜 밤에 잠을 자지 않고 규칙을 위반했느냐"며 처벌할 수 있습니까?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세상 그 어디에도 사랑을 베풀고, 친절을 행하며, 온유하게 행동했다고 해서 그것을 막아서거나 처벌하는 법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열매가 가진 능력입니다. 세상의 법은 죄를 짓지 못하도록 외부에서 행동을 제한하지만, 성령의 사람은 법이 무서워서 죄를 안 짓는 수준을 뛰어넘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내 안에서 솟아나는 사랑과 자비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법과 규칙의 요구를 기쁨으로 뛰어넘어 세상을 감동시킵니다.

오늘 주님께서 주신 말씀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과수원의 열매는 나무 자신을 위해 열리지 않습니다. 배고픈 나그네와 주인 되시는 농부를 위해 존재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 온누리선교교회 성도들이 세상이라는 굶주린 들판에서 예수님의 맛을 보여주는 풍성한 열매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품 안에서 믿음으로 서로를 이 조건 없는 사랑과 인내로 품어줄 때, 우리 교회 전체가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과수원이 될 것입니다.

이제 내 힘으로 조화를 만들려던 노력을 멈추고 생명의 근원이신 성령님께로 돌아갑시다. 매 순간 내 마음의 주권을 성령님께 양도하고 주님과 동행함으로, 여러분의 삶 자체가 세상에 예수님의 향기를 전하는 거룩한 통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 메마른 우리 인생에 성령의 단비를 부어 주시고 참 포도나무 가지 삼아 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내 힘과 노력만 의지하며, 정작 예수님을 닮아가는 인격의 열매를 맺는 일에는 소홀했음을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밤새 아픈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우리 안의 성령의 자비와 사랑이 세상의 계산과 법을 기쁨으로 뛰어넘게 하옵소서.

인생의 어떤 비바람에도 주님께 깊이 뿌리내려, 주린 이웃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살아 계심을 맛보여 주는 나무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인생을 주님의 성품과 영광으로 채우실 성령님을 찬양하며, 한 알의 밀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