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선교교회
요한계시록 강해 43) 음녀의 잔을 거절하라 (수요기도회 20260527) 본문

성경 본문: 요한계시록 17:1-7
1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로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2 땅의 임금들도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3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4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 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5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6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놀랍게 여기고 크게 놀랍게 여기니
7 천사가 이르되 왜 놀랍게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가 탄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설교:음녀의 잔을 거절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참으로 '화려함'이 지배하는 시대입니다. 거리의 광고판, SNS의 끊임없는 이미지들, 그리고 우리가 선망하는 성공한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황홀한 '금과 보석'으로 치장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가끔 그런 생각을 해 보신 적 없습니까? "저 화려한 커튼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저 웃음 뒤에 감춰진 진실은 무엇일까?"
어떤 물건을 살 때 겉포장은 너무나 아름다운데 막상 뜯어보니 내용물은 썩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사기'라고 부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인류 역사가 마지막을 향해 갈 때, 온 세상을 사로잡을 거대한 '영적 사기극'의 실체를 폭로합니다. 바로 '음녀 바벨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를 취하게 만드는 세상의 유혹을 직시하고, 다시금 영적인 정신을 차리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1-3절의 말씀입니다.
1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로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2 땅의 임금들도 그와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사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3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1절을 보면 일곱 대접을 가진 천사 중 하나가 요한을 초청합니다. "이리오라... 음녀가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3절입니다. 요한이 이 음녀를 보기 위해 어디로 이동합니까? 바로 '광야'입니다.
성도 여러분, 음녀 바벨론은 '많은 물 위'에 앉아 있습니다. 이 물은 열국과 백성과 방언들, 즉 세상의 중심부를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 중심부 한가운데 있으면 음녀의 실체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녀가 주는 포도주에 함께 취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실체를 보려면 세상의 소음과 화려함에서 한 걸음 물러나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광야'입니다.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곳 같지만,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할 수 있는 영적 분별력의 장소입니다. 우리가 주일에 예배의 자리로 나오는 것, 매일 아침 말씀 앞에 단독자로 서는 것이 바로 '광야'로 나가는 행위입니다. 세상의 필터를 제거하고 성령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비로소 "아, 저것이 화려한 보석이 아니라 멸망할 짐승 위에 탄 음녀였구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정교하게 만들어진 위조지폐를 잡아내는 베테랑 감별사들의 비밀을 아십니까? 그들이 위조지폐를 골라내기 위해 가짜 지폐들의 특징을 밤낮으로 연구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라고 합니다. 그들이 받는 훈련의 대부분은 가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진짜 지폐'를 수만 번 만지고, 눈이 무르트도록 들여다보는 것입니다.
진짜 지폐가 가진 고유한 종이의 촉감, 빛에 비추었을 때만 나타나는 정교한 숨은 그림, 그리고 특수 인쇄된 잉크의 질감을 몸에 완벽하게 익히는 것이죠. 그렇게 진짜에 철저하게 젖어 들고 나면, 아무리 진짜처럼 교묘하게 꾸민 위조지폐가 들어와도 손끝을 스치는 순간 "어? 뭔가 이상한데?" 하고 단번에 가짜를 잡아내게 된다고 합니다. 가짜가 아무리 화려하게 진짜를 흉내 내도, 진짜가 가진 본질을 결코 따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음녀의 모습이 바로 이 위조지폐와 같습니다. 겉으로는 자줏빛과 붉은빛의 화려한 옷을 입고, 금과 보석으로 치장한 채 눈부신 금잔을 들고 있습니다. 영적인 눈이 어두우면 사도 요한조차 크게 놀라고 기이하게 여겼을 만큼, 세상의 유혹은 너무나 매력적이고 진짜 행복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이 음녀의 유혹과 세상의 거짓된 가치관을 분별해 내는 방법은 세상의 트렌드를 쫓아다니며 연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짜인 하나님의 말씀, 변하지 않는 복음의 진리에 우리의 영혼을 철저히 적시는 것입니다. 진짜에 익숙한 사람만이 세상이 주는 화려한 가짜 행복을 단번에 분별하고 단호히 거절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4-5절의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4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 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5 그의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요한이 광야에서 본 여자의 모습은 압도적입니다. 자줏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몄습니다. 그녀의 손에는 금잔이 들려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이보다 더 성공적이고 매혹적일 수 없습니다. 세상은 늘 우리에게 이런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나를 따르면 너도 이런 옷을 입을 수 있어, 너도 이런 금잔을 들 수 있어."
그러나 4절 하반절은 충격적인 반전을 보여줍니다. "그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금잔은 고귀해 보이지만, 그 안의 내용물은 '오물'입니다. 이것이 세상 유혹의 본질입니다. 돈 자체는 중립적일 수 있으나,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드는 돈의 권세는 우리 영혼을 더럽힙니다. 권력의 자리는 높아 보이나,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진리를 짓밟는 행위는 가증한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금잔(외적 성취)을 약속하지만, 결국 그 안의 더러운 것(영적 타락)을 마시게 하여 우리를 영적으로 마비시킵니다. 5절에 기록된 그녀의 이름은 '비밀'이며 '가증한 것들의 어미'입니다. 그 화려함은 본질을 감추기 위한 가면일 뿐입니다.
이뿐만 아니라 6절에서 요한은 더 무서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6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놀랍게 여기고 크게 놀랍게 여기니
7 천사가 이르되 왜 놀랍게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가 탄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세상의 시스템이 왜 그토록 화려하게 유지될 수 있을까요? 바벨론 문명이 왜 그토록 견고해 보일까요? 성경은 그 기초가 '진리를 외치는 자들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고 말합니다. 세상은 진리에 관심이 없습니다. 오히려 진리가 자신의 가증함을 폭로할 때, 그 입을 막기 위해 피를 흘립니다.
요한은 이 광경을 보고 '크게 놀라고 기이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당대 로마 제국의 그 엄청난 위용이 사실은 성도들의 눈물과 피를 마시고 춤추는 음녀였다는 사실에 전율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오늘날 누리는 어떤 편안함이나 성공이 혹시 누군가의 희생을 짓밟거나, 나의 신앙적 양심을 팔아서 얻은 것은 아닙니까? 음녀는 성도의 피를 마시고 취해 있지만, 성도는 오직 주의 말씀에 깨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짐승을 탄 음녀"나 "일곱 산"이라는 표현을 읽을 때, 무언가 먼 미래에 일어날 괴기스럽고 신비주의적인 현상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1세기 소아시아 지역에서 이 편지를 처음 받아 읽었던 성도들의 생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들에게 이 환상은 매일 삶 속에서 마주하는 너무나 익숙하고도 두려운 현실이었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에서 통용되던 동전 뒷면에는 아주 흥미로운 그림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바로 '일곱 개의 언덕(산)' 위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있는 '로마 여신(Dea Roma)'의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로마는 일곱 개의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로 유명했기에, 그 동전을 만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것이 로마 제국의 거대한 권력과 풍요를 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로마는 전 세계의 부와 권력을 쥐고 세상의 모든 민족을 다스리는, 말 그대로 자줏빛 옷과 보석으로 치장한 화려한 여신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화려한 동전의 이면에는 끔찍한 피비린내 가득한 현실이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은 황제를 신이라 부르며 숭배하게 만들었고, 오직 예수님만을 주님이라 고백하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잔인하게 박해하고 죽였습니다. 겉보기에는 온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여신 같았지만, 성도들의 눈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피에 취해 있는 가증한 '음녀'이자 거대한 '괴물'이었던 것입니다.
요한은 이 환상을 통해 눈앞에 보이는 로마 제국의 가공할 만한 힘과 화려함에 압도당해 낙심하고 있는 성도들을 향해 외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손에 쥐어진 동전 속 로마 여신을 보십시오. 온 세상을 호령하는 저 거대한 제국은 영원할 것 같지만, 결국 하나님의 심판 앞에 무너질 음녀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눈앞의 화려함에 속아 무릎을 꿇지 말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십시오." 오늘날 우리를 유혹하는 거대한 물질주의와 세상 권세 앞에서도, 우리는 이 엄중한 영적 경고를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요?
첫째, '광야의 시각'을 회복하십시오.
세상의 가치관에 함몰되지 않으려면 의도적인 고립이 필요합니다. 하루 10분이라도 스마트폰을 끄고 말씀 앞에 서십시오. "내가 부러워하는 저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도 금잔인가, 아니면 가증한 것으로 가득한가?" 을 물어야 합니다. 오직 성령의 시각만이 우리를 음녀의 유혹에서 건져냅니다.
둘째, 금잔의 화려함보다 잔 안의 '내용물'을 보십시오.
세상은 외모와 부의 축적만 가르치지만, 그리스도인은 잔에 담긴 본질을 보는 사람입니다. 나의 성공이 거룩한 열매인지, 욕심으로 가득 찬 오물인지 대면하십시오. 겉은 소박해도 생명수가 담긴 질그릇 같은 삶이, 화려한 금잔 속에 저주를 담은 삶보다 훨씬 복됩니다.
셋째, '취한 상태'를 경계하십시오.
성공주의와 쾌락주의라는 세상의 포도주에 취하면 판단력이 흐려져 죄를 죄로 여기지 않게 됩니다. 예배의 열정이 식고 복음을 위한 고난이 미련해 보인다면 이미 취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찬물로 세수하듯 날마다 말씀으로 영혼을 깨워야 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요한이 광야에서 본 음녀는 세상을 지배하는 듯 보였으나 결국 엄중한 심판을 맞이합니다. 성도 여러분, 영적인 깊은 잠으로 빠뜨리는 음녀의 독잔을 탐내지 마십시오. 초라해 보일지라도 자줏빛 옷 대신 거룩한 세마포를 입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갑시다. 세상의 화려함이 우리를 비웃을 때에도, 바벨론은 반드시 무너진다는 진실을 붙들고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세상의 화려함 속에 감춰진 가증한 실체를 분별할 수 있는 ‘광야의 시각’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겉만 번지르르한 세상의 금잔을 부러워했던 연약함을 용서해 주시고, 이제는 내면의 거룩한 내용물을 가꾸는 질그릇 같은 삶이 되게 하옵소서.
성공주의와 쾌락주의라는 세상의 포도주에 취해 영적으로 잠들지 않도록,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우리의 영혼을 깨워 주기를 원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조롱할지라도 유혹의 잔을 거절하게 하시고, 주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따르는 거룩한 신부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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