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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 (엡 3:18-19, 주일예배 20260712) 본문

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 (엡 3:18-19, 주일예배 20260712)

온누리선교교회 2026. 7. 12. 03:08

 

 

 

성경본문 : 에베소서  3 18-19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제목: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

 

성도 여러분께서는 이 맹렬한 여름의 더위를 저마다 어떤 방법으로 이겨내고 계시는지요? 냉장고에서 갓 꺼내어 서리가 살짝 내려앉은 시원한 수박 한 조각을 입에 베어 물 때, 혹은 얼음이 가득 차서 보기만 해도 가슴이 뻥 뚫리는 냉수 한 잔을 들이켜거나, 에어컨의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감싸 안는 그 그늘 아래서 잠시 휴식을 취할 때, 우리는 참으로 깊은 시원함과 만족을 경험하게 됩니다. 잠시나마 세상의 모든 피로가 씻겨 내려가는 듯한 해방감을 맛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우리가 솔직하게 우리의 내면을 들여다본다면 한 가지 지혜로운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아무리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 실내에 머물러 있고, 아무리 차가운 음료로 목을 축여도, 우리 영혼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삶의 지침과 본질적인 갈증까지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계절이 가져다주는 환경의 무더위보다 훨씬 더 뜨겁고 거세게 우리를 압박하며 숨 막히게 만드는 영적인 갈증이 존재합니다. 매일 마주해야 하는 삶의 무거운 무게, 미래에 대한 불안감,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은 우리의 심령을 바짝바짝 타들어 가게 만듭니다.

오늘 이 시간, 세대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어 오직 예배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한자리에 모인 우리 모든 믿음의 가족들에게 소망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여름 무더위도, 삶의 그 어떤 팍팍한 영적 갈증도 단번에 날려버릴 영원하고도 푸른 신앙의 기쁨이 이 시간 여러분의 심령 위에 가득히 임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하는 에베소서 3장 18절과 19절을 통해, 사도 바울은 수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비밀을 가르쳐 줍니다. 그것은 세상의 환경이 아무리 메마르고 뜨거울지라도 결코 마르지 않는 영원한 기쁨의 샘이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에 대한 영적인 해답입니다. 바울이 그토록 감격하며 소개하는 영원한 생수의 샘, 그것은 바로 우리를 향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속에서 우리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설명하기 위해 참으로 독특하고 경이로운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치 입체적인 공간을 눈앞에 그려 보이듯, 주님의 사랑을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라는 네 가지 차원의 단어로 묘사합니다. 이 네 가지 차원 속에 담긴 무한한 신비를 우리가 함께 깨닫기를 원합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아주 넓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을 품을 만큼 넓은 사랑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예배를 드리는 이 자리를 보십시오. 한국어를 쓰는 사람도 있고, 러시아어를 쓰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린아이들도 있고, 어르신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자라온 나라와 문화가 다르고, 사용하는 언어도 다릅니다. 생각과 생활 방식도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를 나누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한국 사람만 사랑하시는 분이 아니고, 러시아어권 사람만 사랑하시는 분도 아닙니다. 어린아이만 사랑하시거나 어른만 사랑하시는 분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를 품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있던 높은 담을 허무셨습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의 한 가족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는 곳입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사랑의 길이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끝까지 이어지는 사랑입니다. 잠깐 사랑하고 멈추는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할 때만 사랑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믿음이 좋을 때도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치고 넘어질 때도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기도하지 못하고 낙심할 때도, 주님을 멀리 떠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주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의 사랑은 쉽게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끝까지 우리를 찾으십니다. 길을 잃은 양을 찾는 목자처럼, 주님은 우리를 다시 찾아 품에 안아 주십니다. 이것이 끝이 없는 주님의 사랑입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사랑의 높이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를 높은 곳으로 들어올리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죄 때문에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우리를 죄와 절망 가운데서 건져 주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세상에서 아무 가치 없어 보이던 인생도, 예수님 안에서는 귀한 인생이 됩니다. 주님의 사랑은 우리를 부끄러운 자리에서 영광스러운 자리로 올려 주십니다.

넷째, 그리스도의 사랑의 깊이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의 가장 깊은 아픔 속까지 내려오는 사랑입니다. 사람에게 말하지 못하는 아픔이 있을 수 있습니다. 혼자 울어야 했던 시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 외로움과 절망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은 바로 그 자리까지 찾아오십니다.

주님은 멀리서 바라만 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눈물을 아십니다. 우리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가장 낮고 어두운 곳까지 내려오셔서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십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설 힘을 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랑을 가리켜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의 머리로 다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말로 다 설명할 수 없고, 사람의 생각으로 다 담을 수 없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사랑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할 때, 우리의 마음이 변합니다. 상처가 회복됩니다.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하나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리는 기쁨은 세상 환경이 주는 기쁨이 아닙니다. 세상 형편이 좋을 때만 생기는 기쁨도 아닙니다. 이 기쁨은 세상이 줄 수도 없고, 세상이 빼앗을 수도 없는 신앙의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우리 마음속에서 맑은 샘물처럼 솟아납니다. 환경은 힘들어도,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이 신앙의 기쁨을 이해하기 위해 러시아의 계절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러시아의 겨울은 길고 춥습니다. 땅은 꽁꽁 얼어붙고, 매서운 바람이 불어옵니다. 눈과 얼음으로 덮인 땅을 보면, 다시는 생명이 자라나지 못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겨울이 아무리 길어도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여름이 찾아옵니다. 따뜻하고 강한 햇빛이 비추기 시작하면, 단단하게 얼어붙었던 땅이 녹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얼었던 땅을 뚫고 푸른 싹이 돋아납니다. 어느새 온 땅은 숲과 풀과 생명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와 같습니다. 때로 우리의 마음도 겨울처럼 얼어붙을 때가 있습니다. 걱정과 두려움 때문에 마음이 닫힐 때가 있습니다. 상처와 외로움 때문에 영혼이 차갑게 식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예수님의 사랑이 비추기 시작하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리스도의 따뜻한 사랑이 우리 영혼에 스며들면, 얼어붙었던 마음이 조금씩 녹기 시작합니다.

그때 우리는 이렇게 고백하게 됩니다. “아, 주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시는구나. 나의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주님의 사랑 안에 있구나.” 이 믿음이 우리 마음에 들어올 때, 우리의 영혼에는 새로운 기쁨이 피어납니다. 마치 러시아의 긴 겨울이 지나고 푸른 여름 숲이 찾아오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에도 하나님의 생명이 다시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성도는 환경 때문에만 웃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웃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날씨가 덥고 힘든 일이 있어도, 마음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기 때문에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바로 이런 사랑입니다. 오늘 이 예배 자리에 조부모 세대도 있고, 부모 세대도 있고, 사랑스러운 자녀 세대도 있습니다. 세대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살아온 문화도 다를 수 있습니다. 사용하는 언어도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 모두를 하나로 덮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2000년 전 갈보리 십자가에서 피 흘려 보여 주신 그 크고 넓은 사랑이 오늘 우리 모두를 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의 차이만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언어의 차이, 문화의 차이, 세대의 차이만 보면 마음이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덮고 있는 예수님의 사랑을 함께 바라보면, 갈라졌던 마음이 하나가 됩니다. 가정 안에도 다시 소통이 회복됩니다. 교회 안에도 천국의 기쁨이 회복됩니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고, 세상이 빼앗을 수 없는 신앙의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 19절은 우리를 향해 위대한 축복의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이번 여름철, 뜨겁게 내리쬐는 열기 속에서 몸과 마음의 갈증을 느낄 때마다 세상의 헛된 시원함을 찾아 헤매지 마십시오. 대신 우리의 영원하고 마르지 않는 샘이 되시는 그리스도의 사차원적인 사랑을 조용히 묵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모습이든 용납하고 품어주시는 넓은 사랑, 연약함 중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참아주시는 긴 사랑, 세상의 비천함에서 우리를 들어 올려 존귀하게 하시는 높은 사랑, 그리고 내 가장 깊은 탄식과 아픔을 어루만지시는 깊은 사랑이, 바로 지금 예배하는 여러분의 심령 위에, 그리고 여러분의 소중한 가정 위에 파도처럼 가득하게 밀려오고 있습니다.

이 은혜의 자리에 모인 한국어권과 러시아권의 모든 가족 여러분, 이번 여름은 그저 날씨가 덥다고 불평하고 짜증을 부리는 무기력한 계절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의 크기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삶의 자리에서 날마다 깊이 알아가는 계절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영혼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신앙의 기쁨과 감격으로 모든 삶의 무게를 넉넉히 이겨내고 승리하는, 생명력 넘치는 계절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이 무더운 여름날에 저희의 걸음을 인도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 예배하는 우리 모두가 나를 향한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온 영혼으로 깨닫기를 원합니다. 그 위대한 십자가의 사랑이, 오늘 삶에 지치고 갈급한 우리의 심령 속에 시원한 폭포수처럼 부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의 날씨는 무덥고 삶의 환경은 우리를 지치게 할지라도, 주님을 향한 믿음 안에서 솟아나는 푸른 신앙의 기쁨으로 이 여름을 넉넉히 이기게 하옵소서. 이 자리에 모인 우리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충만하심이 늘 함께하시기를 바라며,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원히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