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선교교회
치우치지 않는 비결 (전 7:16-18 주일예배 20260809) 본문

성경본문: 전도서 7:16-18
16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17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냐
18 너는 이것도 잡으며 저것에서도 네 손을 놓지 아니하는 것이 좋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설교제목: 치우치지 않는 비결
제가 1998년부터 목회하면서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자주 깨닫습니다. 특히 “내가 나를 제일 잘 압니다. 누구도 나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날 때 그렇습니다. 자신의 형편을 자신이 가장 잘 안다는 말은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이 지나치면 다른 사람의 충고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까지 듣지 않게 됩니다.
청년선교구를 담당하던 시절, 기도와 금식을 열심히 하고 성경공부에도 누구보다 열정적인 대학생이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의 즐거움을 절제하며 의롭게 살려고 애썼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이만큼 헌신했으니 하나님께서 반드시 내 기도를 들어주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조언은 듣지 않고 자신이 받은 영감과 판단만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겉으로는 매우 의로워 보였지만, 사실은 자신의 의로움으로 하나님과 사람을 움직이려 했던 것입니다.
그와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는 대학생도 있었습니다. 여자친구를 따라 교회에 나오기는 했지만, 예배 시간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여자친구 때문에 교회에 나오는 것뿐입니다. 내가 예수를 믿나 봐라!”
그는 자신이 쉽게 변하지 않을 것임을 자랑하듯 말했고, 일부러 불신앙과 완고함을 드러냈습니다. 한 사람은 지나친 의로움으로 자신을 높였고, 다른 한 사람은 지나친 악함과 불신앙을 내세웠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내려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전도자는 이 두 극단을 향해 말씀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주님의 말씀입니다. 전도서 7장 16절의 말씀입니다.
16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지혜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스스로 패망하게 하겠느냐
성경은 분명 우리에게 의롭고 거룩하라고 명령하는데, 왜 전도자는 지나치게 의인이 되지 말라며, 그것이 오히려 '스스로 패망하는 길'이라고 경고할까요?
여기서 전도자가 꼬집는 '지나친 의인'의 상태가 바로 현대 심리학과 영성학에서 말하는 '의인 콤플렉스(Righteousness Complex)'입니다.
의인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신의 나약함과 실수를 결코 용납하지 못합니다. 늘 완벽해야 하고, 늘 옳아야 하며, 늘 도덕적 우위에 서야만 직성이 풀립니다. 의인 콤플렉스의 심각한 본질은 이것이 '하나님 없는 의로움'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내가 이만큼 바르게 살고, 이만큼 헌신했으니 하나님도 내 인생을 내 뜻대로 축복하셔야 하고, 타인들도 나를 존경해야 한다고 믿는 일종의 거래적 신앙입니다.
그러나 이 콤플렉스는 필연적으로 두 가지 부작용을 낳습니다. 첫째는 타인을 향한 서슬 퍼런 정죄입니다. 내가 완벽하려고 애쓰는 만큼, 내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가족과 이웃, 교우들을 끊임없이 판단하고 정죄하게 됩니다. 바리새인들이 바로 이 의인 콤플렉스의 종교적 결과물이었습니다.
둘째는 자기 내면의 파멸입니다. 인간은 결코 완벽할 수 없기에, 가면 뒤로 자신의 죄성과 상처를 꽁꽁 숨겨두게 됩니다. 결국 겉은 멀쩡하지만 속은 썩어 들어가는 영적 번아웃과 패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의인’은 히브리어로 ‘차디크’(tsaddiq)입니다.
성경에서 의로움은 단순히 규칙을 많이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바르게 세우는 것입니다. 반면에 ‘패망하다’는 말에는 ‘황폐해지고 무너지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자기 의는 결국 관계와 영혼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참된 의로움을 금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절대적으로 옳은 사람으로 여기며, 자신의 도덕성과 지혜로 인생을 통제하려는 태도를 경고합니다.
“지나치게”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하르베’(harbeh)는 ‘많이, 과도하게’라는 뜻입니다. 또한 “지나치게 지혜자가 되지 말라”는 표현에는 자신을 남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으로 만들고 과시하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 말씀을 풀어 말하면 이렇습니다.
“네 의로움과 지혜를 절대화하지 말라. 네가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언제나 옳다고 생각하지 말라. 네 의로움으로 하나님까지 움직이려 하지 말라.”
그러나 전도자는 반대편의 극단도 경계합니다. 17절의 말씀입니다.
17 지나치게 악인이 되지도 말며 지나치게 우매한 자도 되지 말라 어찌하여 기한 전에 죽으려고 하느냐.
‘악인’은 히브리어로 ‘라샤’ 이며, 하나님의 질서와 정의를 의도적으로 거스르는 사람을 뜻합니다. ‘우매한 자’는 머리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죄의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바르게 살아도 아무 소용이 없다. 나는 내 마음대로 살겠다.”
이것은 의인 콤플렉스의 반대편에 있는 '냉소주의와 방종'입니다.
완벽하게 살려고 애쓰다가 현실의 모순을 만나거나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혔을 때 삶의 고삐를 풀어버리는 행태입니다. 오른쪽 낭떠러지가 '독선과 완벽주의'라면, 왼쪽 낭떠러지는 '포기와 타협'입니다.
우리 인생은 늘 이 두 극단 사이에서 사정없이 흔들립니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의 소설 《죄와 벌》에는 스스로를 정의를 실현하는 선인(善人)이라 믿었던 청년 라스콜리니코프가 나옵니다. 그는 사회의 악 같은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는 것이 세상의 정의를 위한 '의로운 일'이라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자기 의'의 결과는 지옥 같은 내면의 파멸이었습니다. 그는 결국 자신의 범죄와 나약함을 솔직하게 대면하고 나서야 비로소 참된 구원의 길로 걸어가게 됩니다.
16절과 17절을 보면, 한쪽에서는 자신을 하나님처럼 높이고, 다른 쪽에서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이 두 극단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입니까?
18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18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날 것임이니라.
‘경외하다’는 말은 히브리어 ‘야레’ 에서 나온 말입니다. 단순히 하나님을 무서워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주권을 인정하고, 그분 앞에 자신을 낮추며 말씀에 순종하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교만해지지도 않습니다.
“나는 연약하지만 하나님은 강하십니다.
나는 모든 것을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아십니다.”
이것이 치우치지 않는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음은 완벽한 사람들이 자신의 의를 자랑하는 종교가 아닙니다. 완벽할 수 없기에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의지하는 죄인들의 이야기입니다.
스스로 의인이 되려다가 무너지지 마십시오. 세상에 실망하여 악과 냉소의 길로 치우치지도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며 십자가에 삶의 중심을 고정하십시오.
하나님을 경외할 때 우리는 잘했을 때 교만하지 않고, 넘어졌을 때 절망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정죄하기보다 품어주고,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독선과 방종이라는 두 극단에서 지켜주시고, 은혜와 순종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게 하실 줄 믿습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자기 의와 교만으로 타인을 판단했던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의인의 가면을 벗고 우리의 연약함을 주님 앞에 정직하게 내려놓게 하옵소서.
냉소와 방종으로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십자가의 은혜를 붙들게 하옵소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끝까지 믿음과 순종의 길을 걷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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