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요한복음 강해 72) 예수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하신 일곱가지 말씀

by 온누리선교 2013. 3. 29.

성경본문: 요한복음 19장 23~30절

23. 군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24.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

25.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29.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설교: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하신 일곱가지 말씀

오늘은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신 성 금요일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신 곳은 해골 모양의 바위 언덕이었습니다. 언덕 이름은 라틴어로는 갈보리라 하였고 히브리어로는 골고다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십자가 처형은 그 당시 로마뿐만 아니라 고대 아프리카, 애굽, 바사, 헬라 등에서 유행했던 형벌이었습니다. 십자가형은 너무나 잔인하고 끔찍하게 치욕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로마 시민들에게는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노예나 반란자들, 극악한 강도들에게 이런 십자가형이 주어졌습니다. 보통 십자가에 달리면 약 3일 정도의 고통을 겪게 되는데, 탈진과 아픔 때문에 최대한의 고통을 느끼고 난 후에 사흘째에는 절명하게 됩니다. 고통과 탈진이 너무나 심할 경우에는 자비를 베풀어 주는 방법으로 다리를 부러뜨리거나 창으로 찔러서 죽음을 재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형수의 시체는 연고자가 있을 경우에는 그들에게 주어서 무덤에 장사하게 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나 아주 극악한 사형수의 경우에는 십자가 틀에 내버려두어 독수리의 밥이 되게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3일을 계신 것이 아니라 오전 9시에 처형을 당하셔서 오후 3시에 운명하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이 겪으신 십자가입니다. 성경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셨다"고 한마디로 표현한 그 말 앞뒤에는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이런 고통스러운 순간과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순간들이 계속되었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이렇게 처절하게 십자가에 못박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처절함 속에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상에서 7번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 첫 번째 말은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눅23:34)이고 두 번째 말씀은 구원받은 강도를 향하여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눅23:43)라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나와있는 3번째 말씀은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향하여,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요19:26-27)라고 하셨으며, 본문에는 나와있지는 않지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마27:46), 주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는 탄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 “내가 목마르다” (요19:28)라고 말씀 하신 후, “다 이루었다” (요19:30)고 말씀하시면서, 마지막으로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눅23:46)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시고서는 운명하셨습니다.

십자가 상에서 하신 이 말씀은 참으로 우리에게 귀한 말씀이며,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을 깊이 알수 있습니다. 제 3언부터 6언까지의 말씀을 함께 살펴보면서 그 은혜를 각자 누리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26~27절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성정은 인간과 동일하신지라, 육신의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이 밀려왔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그 무시무시한 십자가형을 받으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이 얼마나 마리아에게 힘들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께 순종하며 받들었습니다. 눅2:51에는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고 했습니다. 12세 때는 부모와 함께 성전에 예배하러 갔습니다. (눅2:41-42)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육신의 부모와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며 가족 안에서 순종과 화합으로 사시던 분이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몸이 부서지고, 죽음의 문턱의 공포가운데서도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돌아보고, 그 효심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였습니다. 흉악죄인으로 죽은 아들 때문에 해를 당할까, 심적인 고통으로 인하여 병이 나지 않을까 하여 제자인 요한에게 그 안위를 부탁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이어 28절 함께 읽겠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우리는 조금만 땀을 흘려도 곧 갈증을 느껴오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경우를 상상해 볼 때 땀이 땅에 떨어지는데 핏방울 같이 되었다고 눅22:44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 이 세상에 역사상에 예수님처럼 간절히 기도를 해 본 사람이 있겠는가? 생각해 봅니다. 네 아무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22:14에 “나는 물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라고 기록되어 있고, 시69:21에 “저희가 쓸개로 나의 식물을 주며 갈할 때에 초로 마시웠사오니”라고 예수님의 갈증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육체적으로 영혼적으로 목이 마르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철야기도, 6차례의 심문을 받으시면서 받으신 정신적인 고통,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향하시면서 흘리신 땀, 창에 찔린 옆구리에서 물과 피를 흘리신 일을 보면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느끼시는 갈증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원론적으로 보면, 혈과 육으로 지은 죄는 일단 육신적으로,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육신의 죄가 다만 육신으로 끝난다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죄는 영혼까지 물들게 하고 파괴시키는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느끼시는 갈증은 바로 우리의 갈증이기도 합니다. 죄로 인하여, 고통스럽다 못해, 공허하고 허무한 우리의 인생이 바로 우리를 점점 메마르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수를 마셔야 합니다.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수로 말미암아 촉촉이 적셔지는 영혼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치 모래와 같은 영혼을 가지고 있어 늘 죄 가운데서 살아간다면, 아무리 은혜의 생수가 우리 영혼에 부어진들, 늘 메마르고 목마를 뿐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사실은 이러한 목마름을 예수님께서 지금 우리와 동일하게 경험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어째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혼과 몸이 그와 같이 목이 마르셨을까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한 길목에서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잃어버린 외로운 분이셨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들이 모두 도망을 갔습니다. 십자가의 거룩한 사건이 있기 5일전,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에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실 때 “호산나! 호산나!” 하면서 환영하던 사람들이 어느 틈에 마음이 변하여 미움과 증오의 욕설을 주님께 던지고 있었습니다. 그것뿐이겠습니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말씀하시던 하늘의 아버지마저 무심한 듯 자신을 버리는 것 같은 상황 속에 놓여 있었으니 목이 마르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이런 상황에 종종 놓여있을 때가 있습니다. 내가 사랑한 사람들, 내가 믿었던 사람들이 나를 거부하고 등을 돌립니다. 외롭습니다. 정에 목마릅니다. 어차피 사람은 혼자야 하지만, 그 처절한 고통은 견딜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께서 이러한 사람들의 배신 가운데서 그 고통을 아시고, 또 그 고통을 아시기에 우리의 고통을 아신다는 점입니다. 도대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왜요? 왜 이러한 목마름을 경험하신단 말입니까? 이것은 바로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죄악으로 인해 갈증을 느끼는 죄인들의 입장에서 이해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는 바다에 빠진 자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바다에 뛰어 들어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배반을 받으셨으면서도 오히려 사랑해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은 사랑을 값없이 주십니다. 그러면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요7;37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했습니다. 생수는 믿는 자가 받을 성령을 말씀합니다. 주님께서 “내가 목마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들이 십자가 위치에서 각자가 예수님처럼 “내가 목마르다”라는 신앙적 태도를 가지고 늘 간구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생수를 성령이라고 했습니다. 성령의 생수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받을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함이 우리 안에 있어야 복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음을 우리는 모두 다 압니다. 우리의 목마름을 이해하신 주님, 진정한 목마름을 해소시켜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오로지 우리의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주시는 생수, 즉, 성령충만하게 살아가는 것 뿐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순간에서도, 어떠한 상황에서도, 내 마음과 뜻대로 행하는 육신의 삶을 포기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되면, 영적으로 전혀 목마르지 않는 성령께서 지배하는 삶을 살게 되어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놀라운 일들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어서 29~30절의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데체 무엇을 이루셨다는 말씀입니까? “다 이루었다”는 6번째 외침의 말씀을 통해서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성취하셨다는 말입니다. “다”는 전부, 또는 모든 것, 또는 온전한 것을 의미합니다. 즉 “다 이루었다”는 것은 모든 것을 온전히 성취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이 성취되었습니까? 첫째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속죄사역이 완성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그리스도의 희생이 아니고는 “속죄를 위한 값”(贖錢)을 대신 갚을 것이 없습니다.

이사야 53:5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고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속죄를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둘째로, 하나님의 언약이 완성된 것입니다.

과거 구약에서는 죄인에게 순종을 계약 조건으로 합니다. 그러나 인간들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고 꼭 지켜야 할 십계명을 제시했지만 또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인간은 죄를 벌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지 못했고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에게 은혜의 언약을 제시하셨습니다. 곧 하나님의 독생자를 보내셔서 인간을 구원하려는 계획을 제시하시고 그 아들의 희생을 통해서 구원하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것이 곧 신약입니다.

그러면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어떤 약속이 이루어졌는가? 구원의 약속이 이루어졌습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는 약속을 완성하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죄를 벌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셨으며 죄인을 사랑하셔서 구원하시려는 사랑의 약속이 이루어졌습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과 우리 인간사이에 막힌 담이 허셨습니다. 잃어버린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회복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2:4)고 하신 말씀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모든 사람의 구원입니다. 이 하나님의 뜻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다 이루었습니다.

이야기 하나를 말씀 드리고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미국의 어느 목사님이 농부의 집에 하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농부는 예수를 믿지 않고 그 부인은 늘 남편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를 그에게 설명할 기회를 찾고 있었는데 하루는 아침에 그 농부가 목사님을 부르더니 닭장엘 같이 가보자고 했습니다. 가보니까 그 닭장 둥우리에 암탉이 앉아 있는데 그 날개 밑에서 막 병아리들이 삐약 삐약 소리를 내면서 한 마리씩 기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농부가 그 암탉을 건드려 보라고 해서 툭 건드렸더니 그 암탉은 죽어 있었습니다. 농부가 말하기를 "저 머리에 상처를 보십시오. 족제비란 놈이 그 몸에서 피를 다 빨아 먹었는데도 그 놈이 새끼들을 잡아 먹을까봐 꼼짝도 하지 않고 그대로 죽은 것입니다." 그때 목사님은 "오! 저것이 바로 그리스도와 같습니다. 그는 십자가에서 모든 고통을 참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움직일 수도 있고 십자가에서 내려와 자기 생명을 구원할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되면 당신과 나는 멸망받기 때문입니다." 그 농부는 그 뜻을 깨닫고 즉시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모셔들였다고 합니다.

지금은 성 금요일 밤입니다.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운명하신 날입니다. 십자가상에서 꼼짝도 하지 아니하시고, 움직여 내려와 자기 생명을 구원하실 수 있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 모진 고통을 견디시고 운명하신 날입니다. 그러므로 그 고통을 우리를 위해 감당하여주심에 감사드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사랑을 분명히 깨달아 늘 은혜 안에서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

당신의 희생과 사랑에 온 마음을 다하여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주님을 멀리 떠나고 모른다하며 지냈던 어리석었던 죄된 나날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십자가상의 용서를 통하여, 주님께서 우리의 주인이 되어주셔서 목마르지 않고, 성령충만한 인생을 살도록 허락하심,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볼 때마다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저주가 축복으로 바뀌게 하시는, 죽음이 생명으로 변화시키신 주님을 의지합니다. 주여 우리와 함께 하시어서, 주님을 따르는데 부족함이 없도록 부활의 능력을 우리에게 펼치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