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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히브리서강해22) 다시오실 예수님(수요예배 20131218)

by 온누리선교교회 2013. 12. 18.

설교본문: 히브리서 9:23~28

23.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24.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25.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26.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27.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28.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설교: 다시오실 예수님

 

돼지도축장을 한 번 보신 적이 있습니까? 한 번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는데 참으로 희한하였습니다. 돼지들이 죽으러 가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 저항없이 꼬리를 흔들면서 도축장으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돼지들이 죽음의 공포가 있으면 근육이 수축되고, 육질이 안좋다하여 도축하는 사람들이 쓰는 방법이 있답니다. 그것은 바로 돼지가 가야할 길에 맛있어 보이는 콩을 조금씩 떨어뜨리고 앞서가면 돼지는 그 콩을 먹는 맛에 도살장에 제 발로 꼬리를 흔들며 즐겁게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당장의 눈앞에 콩 주워 먹는 맛에 죽음의 길을 걷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렴풋이 하나님의 심판과 지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있으면서도 "죽어봐야 알지!"하면서 그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인을 일부러 무시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재물과 권세와 쾌락과 명성이라는 달콤한 콩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콩을 주워 먹는 재미 때문에 지옥을 향해가고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콩의 유혹이란 너무나 달콤해 지옥을 잊어버리게 만듭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콩을 먹고 죽음의 길로 아무 거리낌없이 가고 있습니다. 하늘을 손으로 가린다해서 하늘이 없어지지 않듯이 심판을 외면한다고 해서 심판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심판을 우리가 벗어나려면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깨어 다시 오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리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는지 아시고, 우리의 인생을 구원해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은혜 받는 귀한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25~26절의 말씀입니다.

25.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26.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땅에 있는 성소는 하늘에 있는 성소를 그저 비슷하게 본따 만든 것에 불과합니다. 즉, 마치 그림자같은 것입니다. 그림자를 보면, 사람이나 물건의 형체를 보고 사람인지, 자동차인지, 빌딩인지 구분을 할 수 있으나, 그 것이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주 예수 그리스도는 땅에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하늘의 성소에 곧 바로 들어가셨습니다. 왜냐하면 땅의 성소에서는 짐승의 피를 드렸지만, 하늘의 성소에서는 ‘더 좋은 제물’을 드려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는 짐승의 피와는 달리 친히 자신을 드리신 ‘더 좋은 제물’이 되셨습니다.

왜 ‘더 좋은 제물’인가요? 구약의 대제사장들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동물의 피를 가지고 들어갔는데, 이것은 희생 제물로써 죗값을 치렀음을 그저 나타낼 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땅의 성소는 하나님께서 계시는 진짜 성소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동물의 피가 아니라 자신의 피로 하늘 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래서 땅의 성소에 있었던 구약의 제사장들은 인간의 겉에 나타나는 죄와 허물을 그저 일시적으로 씻기 위해서 동물의 피를 가지고 땅의 지성소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의 육체뿐 아니라 양심까지 영원히 깨끗이 씻기 위해 자신의 피로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 하늘이 땅보다 위대한 만큼 우리 예수님께서는 더 위대하고 온전하게 우리 죄를 사하셨습니다.

 

기도원 부흥회에서 들은 어느 목사님의 간증이야기입니다. 이 목사님께서 꿈을 꾸셨답니다. 이 목사님이 죽어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목사님에게 묻기를 "너는 항상 진실했는가?"라고 물으실 때, 목사님은 솔직하게 "아니오. 그렇게 못살았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어 물으셨습니다. "너는 항상 깨끗하게 생활했는가?" "아니오. 그렇게 살지 못했습니다." 계속 하나님께서는 "항상 정직하게 생활했는가?"라고 물으실 때 이 목사님께서는 또 "그렇게 살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하며, 두려움과 걱정에 고개를 떨구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환한 빛이 비치며 예수님께서 그 목사님의 곁에 오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목사님 옆에서 서서 하나님을 우러러 보시며 말씀하시기를 " 아버지! 이사람이 언제나 깨끗하지도 못했고, 언제나 정직하지도 못했고, 진실하지도 못한 것을 저도 잘 압니다. 그러나 이 사람이 저 세상에 있을 때 항상 내 편을 들어서 살아왔기에 저도 천국에서 이 사람 편을 들어주기 위해 섰습니다. 통과시켜주십시오."라고 말씀하시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웃으시며, 천국문을 열어주시는 것을 보고, 이 목사님은 잠에서 깨었습니다. 그리고 깨자마자 주 예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평생 그렇게 절절하고 진심을 다해 드린 감사기도가 없었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과연 우리도 이 목사님처럼 주 예수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있습니까? 우리도 심판의 날에 서면 이렇게 주 예수님께서 우리의 편을 들어주시고, 우리를 위해 일하여 주실 것을 믿으십니까? 이에 우리는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27~28절의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27.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28.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탈무드에 있는 이야기 입니다. 어떤 부인이 죽은 자기 아들의 시체를 안고 산위에서 수양을 하고 있던 랍비에게 찾아가서 통곡하며 말했습니다. "랍비여, 제발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제 아들을 살려주세요." 이 처절한 어미의 이야기를 듣고 랍비는 당당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진정하십시오. 당신의 아들을 살려줄 터이니 먼저 동네에 가서 겨자씨를 구해 오시오. 단한가지 명심할 것은 그 겨자씨는 아무도 죽음의 고통을 당해보지 않은 집에서 구해야 하오" 이 부인은 곧 동네로 뛰어 내려갔습니다. 그러나 집집마다 아무리 찾고 찾아도 죽음의 슬픔을 당하지 않은 집은 없었습니다. 이에 부인은 해가 지고 캄캄한 밤이 되어서야 겨자씨를 구하는 것을 포기 하고 빈손으로 터벅터벅 랍니에게 돌아왔습니다. 이를 보고, 랍비는 "그렇습니다. 부인의 아들이 죽은 것은 참 안된 일이지만 죽음이란 모든 인간들에게 꼭 한번은 닥쳐올 필연적인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은 아무도 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랍비의 말이 맞습니다. 인간은 그 누구도 영원히 이 땅에서 육신을 가지고 살 수 없습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는 것이 이 세상에서의 우리의 운명입니다. 그러나 종종 우리 주위에서 보면, 늙어가는 것, 죽음에 가까이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어떻게 해서든 피해가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유명한 세계적인 호텔 힐튼의 상속녀이고, 할리우드의 문제아인 패리스 힐튼이 2007년쯤인가 자신은 "냉동인간"이 되어서 영원히 살거라고한 인터뷰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이 할리우드 스타는 자신이 키우면서 아끼고 사랑했던 애완견 두 마리를 극저온 냉동보관을 해서 냉동견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병이 발병하여 죽을 운명에 처해지면 냉동인간이 되어 의학기술이 발전한 시기가 오면 해동되어서 수술해 고치고 수천년 후에도 자신의 인생을 계속 유지 하고 싶다고 말한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지만, 실제로 많은 세계의 부자들이 이런 생각과 계획을 가지고 투자를 한다는 기사를 실제로 본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부자들이 이런 계획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그 계획은 절대로 이루어지지도 않고 이루어진다하더라도 결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오늘 말씀처럼, 사람은 죄 때문에 죽고, 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심판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초림하여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 ‘단번에’ 자신을 ‘더 좋은 제물’로 드리셨습니다. 그리고 하늘 성소에 들어가신 예수 그리스도는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그래서 다시 오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고, 믿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들마저 사람들은 자신이 싫어하는 것은 애써 부인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것입니다. 사랑과 자비가 많으신 하나님이 그렇게 끔찍한 지옥의 심판을 하실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심판이라는 주제는 하나님의 성품과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오늘 성경말씀에 나와 있듯이, 인간의 죽음이 확실한 것처럼 심판도 확실하다고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도 법이 있고 재판관이 있어서 범죄자들을 심판합니다. 만약 세상에 법도 없고 심판도 없다면 악한 사람들은 좋아하겠지만 정직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그곳이 지옥과 같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최후의 심판자이십니다. 그러나 심판의 날은 믿는 자에게는 구원의 날이 됩니다. 예수님은 최후 심판의 때에 우리를 변호하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어떤 목사님의 명상록에 이런 글이 있었습니다.

“월요일, 주님이 내 집에 오셨지만 문 앞에서 돌아가 버리셨습니다. “네 마음에는 아들 딸이 가득 차서 내가 들어갈 자리가 없구나.”

화요일, 노크만 하신 주님은 발길을 돌이키셨습니다. “네 집은 돈으로 꽉 차 발 디딜 틈도 없구나.”

수요일, 나를 부르시던 주님은 슬픈 낯이 되셨습니다. “세상 재미에 귀가 먹어서 내 음성을 못 듣는구나.”

목요일, 주님은 화를 내셨습니다. “내가 찾아왔는데도 조금 피곤하다고 인사도 안 하니?”

금요일, 주님은 우셨습니다. “뭐라고? 나보고 다시 한 번 십자가에 못 박히라고?”

토요일, 거센 노크 소리와 함께 주님의 고함 소리. “이젠 나에게 문도 안 열어주느냐!”

주일, 교회에 갔더니 주님께서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날마다 네 집에 가도 들어갈 자리가 없었는데, 그래도 오늘 하루라도 잊지 않고 잠깐이라도 들려주니 고맙구나!”

우리는 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바란다고 하지만, 우리는 과연 얼마나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바라고 있는지 잘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이제 오시옵소서! 말하면서, 막상 주 예수 오심이 우리에게 부담이 되고, 힘들고, 자신이 없지는 않은지요. 주 예수 오심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고 필수적인 것! 반드시 오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겠습니까?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늘 감사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늘 우릴 구원해주신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 오시는 날 그 누구보다 먼저 두 손들고 환영하며 함께 천국에 가는 저와 우리 열방교회 성도님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주님!

우리를 위하여 세상의 헛된 것들을 다 물리치시고, 하늘의 보좌까지도 버리시고 이 땅에 내려와 우리를 구원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그것도 모자라 다시 이 땅에서 우리를 위해 오셔서 진정으로 악한 사단의 끈에서 우리를 풀어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온전히 살게 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주님 속히 오셔서 우리를 건져주시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단의 권세 아래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권능으로 하루하루를 살게 하옵소서. 그래서 우리가 병마에서 떠나게 하시고 고통과 문제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또 천국소망을 가지며 주님의 은혜로 이 모든 고난을 견디고 이기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기도를 이루어주실 귀하신 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