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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형통한 자가 되자 (창 39:1-3, 주일예배 20250914)

by 온누리선교교회 2025. 9. 13.

성경 본문: 창세기 391-3

 

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요셉을 사니라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설교: 형통한 자가 되자

 

여러분, ‘형통하다라는 말을 들으면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버는 것, 좋은 집과 좋은 차를 갖는 것, 자녀들이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에 가는 것, 몸이 아프지 않고 건강한 것, 내가 원하는 모든 일이 술술 잘 풀리는 것을 생각할 것입니다. 물론 이런 것들도 좋은 일이고,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는 복입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형통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요셉이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성경이 말하는 진짜 형통이 무엇인지 배우고,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안에서 형통한 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요셉의 상황은 우리가 생각하는 형통과는 거리가 멉니다. 요셉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사랑하는 아버지를 떠나, 형들의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려 왔습니다. 말도 잘 통하지 않고 문화도 다른 이집트라는 낯선 땅에서, 보디발이라는 사람의 집에 노예로 있습니다. 노예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주인이 시키는 대로 일하고, 주인이 주는 대로 먹고 자야 합니다. 자유도 없고, 희망도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요셉을 향해 놀라운 말씀을 합니다. 2절을 다 함께 읽어볼까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모든 것을 잃고 노예가 된 요셉을 성경은 형통한 자라고 부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진짜 형통의 비밀 세 가지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2절에서 3절의 말씀 먼저 보도록 하겠습니다.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첫째, 형통은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함께하심입니다.

오늘 본문 2절은 형통의 가장 중요한 비밀을 알려줍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요셉이 형통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그가 똑똑해서입니까? 그가 일을 아주 잘해서입니까? 그가 보디발이라는 좋은 주인을 만나서입니까? 아닙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셨기 때문에그가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가장 중요한 진리입니다. 진짜 형통은 내가 어디에 있느냐,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진짜 형통은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때로 어려운 환경 때문에 불평하고 원망할 때가 많습니다. ‘돈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몸이 아프지만 않았으면...’, ‘한국말을 더 잘했으면...’, ‘나를 무시하는 저 사람만 없었으면...’ 내 삶이 더 행복하고 형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최악의 환경에 있었습니다. 노예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그의 삶은 형통한 삶이었습니다. 반대로,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그 삶은 결코 형통한 삶이 될 수 없습니다. 사울 왕을 보십시오.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모든 권력과 부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을 떠났을 때, 그의 마음에는 불안과 두려움만 가득했고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우리들은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어려운 문제들로 인해 힘들어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나의 상황과 환경이 나의 형통을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진짜 형통의 시작입니다. 절망적인 노예의 자리에서도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오늘 저와 여러분과도 함께 하십니다. 이 사실을 믿고 주님을 꽉 붙드시길 바랍니다.

 

둘째, 형통은 성실한 삶을 통해 드러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신다는 것이 어떻게 나타났을까요? 요셉이 매일 가만히 앉아서 기도만 하고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2절 하반절과 3절을 보십시오.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놀랍게도, 요셉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누가 보았다고 합니까? 바로 그의 주인인 보디발이 보았습니다. 보디발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집트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요셉을 보니, “, 저 젊은이는 뭔가 다르다. 여호와라는 신이 그와 함께 하는구나. 그래서 그가 하는 일마다 다 잘되는구나.” 하고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디발이 그것을 알 수 있었을까요? 요셉의 삶을 통해 보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비록 노예였지만,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주인이 보든 안 보든,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정직하게 일했습니다. 그의 성실한 삶의 태도와 그가 하는 일의 좋은 결과를 보고, 보디발은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게 된 것입니다.

 

미국의 한 큰 회사에 청소부로 일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 밤 아무도 없는 사무실을 청소했습니다. 그는 그냥 대충 바닥만 쓰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청소하는 이 사무실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사무실이 되도록 만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는 모든 책상을 정성껏 닦았고, 쓰레기통을 깨끗이 비웠으며, 창문까지 반짝반짝하게 닦았습니다.

어느 날 밤, 그 회사 회장님이 늦게까지 일하다가 이 청소부를 보게 되었습니다. 회장님은 자기 책상이 매일 아침 놀랍도록 깨끗한 이유를 그제야 알았습니다. 회장님은 청소부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데, 왜 그렇게 열심히 일하십니까?" 그러자 청소부가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저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일하지 않습니다. 저는 저와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일합니다. 이 일이 하나님께서 저에게 맡기신 일이라고 믿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이 말에 회장님은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요셉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보디발을 위해 일했지만,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도의 삶의 태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은 우리의 삶을 통해 세상에 보여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일하는 공장에서, 식당에서, 사무실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가정에서 여러분의 성실하고 정직한 모습을 통해 주변 사람들이 , 저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서 다르구나. 하나님이 정말 저 사람과 함께 하시는구나.” 하고 고백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살아있는 전도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형통한 자의 삶입니다.

 

셋째, 형통은 나를 통해 다른 사람을 복되게 하는 것입니다.

요셉의 형통은 요셉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요셉 때문에 누가 복을 받았습니까? 바로 그의 주인 보디발과 그의 온 집안이 복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395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하나님께서는 요셉 때문에보디발의 집에 복을 주셨습니다. 요셉이 그 집에 오기 전과 온 후가 완전히 달라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형통한 자로 부르시는 중요한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이유는, 나 혼자 잘 먹고 잘살라고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통해 내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흘러가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축복의 통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복의 근원으로, 축복의 통로로 부르셨습니다.

여러분이 가정에 있을 때, 여러분 때문에 가정이 화목해지고 평안해집니다. 여러분이 직장에 있을 때, 여러분 때문에 직장 분위기가 좋아지고 일이 더 잘됩니다. 여러분이 우리 교회에 있을 때, 여러분 때문에 교회가 더 사랑이 넘치고 부흥하게 됩니다. 이것이 진짜 형통한 자의 모습입니다.

우리 교회는 한국인 성도들과 이주민 성도들이 함께 모여 예배 드리는 아름다운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축복의 통로로 여길 때, 우리 교회는 더욱 형통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우리들은 서로 섬기고 도우며 그들의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나 때문에 내 옆 사람이 복을 받는 놀라운 역사가 우리 교회 안에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전 세계에 걸쳐 총 865개의 백화점을 운영하고 있는 J.C.페니 컴퍼니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이 회사의 회장이자 창업주인 페니(J. C. Penney)는 자신의 성공 비결을 역경과 신앙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역경은 저에게 성공의 비결을 가르쳐 줬고 예수 그리스도는 성공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성공한 인생의 특징은 반드시 행운이 따릅니다. 그리고 그 행운을 누구나 만날 수 있지만, 이후 행운을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왜냐하면 형통하게 하시는 분의 힘을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형통의 원어는 히브리어로 찰레아흐’(Tsaleach)인데 이는 나아가다, 추진하다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가 한국어로는 형통’, 영어 성경으로는 성공적인’(Successful)이라는 단어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형통은 결국 끝까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요? 성경은 수도 없이 말합니다. ‘말씀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명확히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아갈 때, 우리가 나아갈 길이 보이고, 더 크고 비밀한 것을 알게 됩니다. 진짜 큰 성공을 이루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형통하심을 경험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큰 부와 성공을 거두어도 하나님을 모르면 진정한 형통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끝에 가서 형통한 인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형통은 끝이 좋아야 합니다. 복권에 당첨되어 억만장자가 되어도 결국 빈털터리가 되면 형통한 삶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가슴에 품고 나아가는 삶이 바로 온전한 형통한 삶입니다. 이런 삶을 우리 모두가 누리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창세기 말씀을 통해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주님과 함께하며 형통한 자가 되었던 요셉의 삶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요셉이 노예의 자리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성실했던 것처럼, 우리도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우리의 성실한 삶을 통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시고, 믿지 않는 이웃들이 우리를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보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우리를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나만 복을 누리는 인생이 아니라, 나로 인해 내 가정이, 내 직장이, 우리 교회가, 그리고 우리의 이웃이 복을 받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교회가 서로를 섬기고 사랑하며 하나님의 복을 흘려보내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