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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신앙공동체로서의 교회 (고전 10:32-33, 동부시찰회설교 20250918)

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by 온누리선교교회 2025. 9. 18. 03:53

본문

 

성경본문: 고린도전서 10:32-33

32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설교문: 다문화 신앙공동체로서의 교회

 

오늘 제가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말씀은 당시 고린도 교회의 상황 속에서 바울이 준 권면입니다. 고린도교회 교인들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는 문제로 인해 성도 간에 갈등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다루면서 바울은 단순히 행동의 옳고 그름을 넘어, 더 깊은 복음적 원리를 제시합니다. 바로 다양성 속에서 하나 됨을 이루는 공동체성입니다.

오늘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초대교회의 예를 성경에서 보면서 과연 교회의 정체성은 어디에 있는가를 함께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교회 밖에는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며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교회 안에서의 사소한 문제로 갈등을 벌이는 이 고린도 교회의 모습은 오늘 모습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당신의 피로 세우신 본래의 모습으로의 교회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사도 바울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교회를 어떻게 섬길지를 함께 생각해보시기를 바랍니다.

 

32절의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32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바울은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유대인과 헬라인은 당시 세계를 대표하는 문화적, 인종적 그룹이었습니다. 유대인은 율법을 중시했고, 헬라인은 지혜와 자유를 추구했습니다. 이 두 그룹은 가치관과 삶의 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일 민족을 자처하던 한국 사회도 이제는 다양한 문화와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다문화 사회가 되었습니다. 해외에서 온 근로자, 결혼 이주민, 난민 등 수많은 '헬라인'들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향해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까?

혹시 모르는 사이에 우리의 관습, 예배 방식, 언어 사용 등으로 인해 그들이 복음에 접근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교회가 익숙함이라는 울타리 안에 갇혀 새로운 이들에게 벽을 쌓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교회는 모든 이에게 열린 공간, 환영받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제가 방과후 프로그램을 하면서 이 동네에서 사회통합을 잘하는 이주민 공동체를 이끌고 있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왜냐하면 공무원들이 봤을 때는 한국인이든 이주민이든 학부모 교육이 잘되어 있고, 아이들도 학교생활을 하는데 이중언어사용 및 학업기초도 제대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다문화언어 강사 등 인력을 투입하는데도 학교나 구청에서도 하기 힘든 일을 작은 교회가 하고 있고, 그것을 이 동네에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하지 못하는 것을 교회는 할 수 있다는 것을 사도 바울은 2천여 년 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회에서는 걸림돌인 일들을 교회에서는 하지 말라고 바울은 자신 있고도 분명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는 어떤 식으로 걸림돌을 해결해야 할까요?

33절의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바울은 이어서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자기희생을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우상 제물에 대한 지식을 가졌던 이들은 "모든 것이 가하다"는 논리로 자신의 자유를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지식과 자유를 잠시 내려놓으라고 권면합니다.

제가 2010년부터 다문화 선교 관련 강의에 대한 한계를 느꼈습니다. 학교 강의에서는 가능한 교회 내 다문화 신앙공동체 형성이 학교 밖에 나오면 불가능한 것이 교회 내 다문화 신앙공동체였습니다. 이것은 사실 제가 영국에서 유학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스코틀랜드 장로교는 존녹스의 장로교 원조라는 자긍심이 커서 교회를 이주민에게 별도로 빌려줄 지언정 교회 공동체 안으로 들이기에는 스코틀랜드 장로교 전통을 조금도 양보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즉 문화적 중간지대를 스코틀랜드 교회는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교회가 우리는 다문화 신앙공동체로서 준비가 안 되었다라고 합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10년 넘게 지역교회뿐 아니라 대형 교회에서도 들었습니다. 이주민 노동자들에게 선교적 지원을 할 뿐이지 자기 교회의 일원으로서 받아들일 생각이 없었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을 교회에서 찾기 어렵습니다. 젊은 세대들은 믿음을 가졌더라도 교회에 헌신하지 않으며 믿음 생활하기 좋은 교회들을 찾아 쇼핑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현상들은 젊은 목회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하도 답답해서 CBS 특집기사 부목사님 모시기 힘든 이유가 뭘까?”를 봤습니다. 거기에서 가장 큰 이유가 경제적 처우도 있지만 비전이 없기 때문이라고 나오더군요.

믿음 생활하기 좋고 비전도 있는 교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합니까?

목회자들과 장로님 등 재직들이 더 얼마나 희생해야 그런 교회가 될 수 있겠습니까?

 

자기희생을 감당하는 진정한 성숙은 자신의 익숙함과 편안함을 내려놓고, 타인의 유익을 구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이것은 단순히 친절을 베푸는 것을 넘어, 하나님께서 보내신 영혼들에 대한 문화와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그들의 눈높이에서 복음을 전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을 의미합니다.

 

저도 사실 이주민 인권에 집중된 사역만 하다가 2019년 이후 여기에서 참으로 다양한 세대의 한국인 가정을 만나 깜짝깜짝 놀라기도 하고, 새로운 상황과 배경으로 온 이주민들을 대상으로 사회사업과 목회 사역을 넘나드는 줄타기를 하고 있습니다. 가끔 저는 사도 바울 앞에서 절을 하고 싶을 지경인데 어쩌면 사도 바울은 그 많은 지역을 다니면서 이 아슬아슬한 긴장감 있는 관계들을 넘어 교회들을 세웠는지 감탄할 지경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도 바울의 이야기를 근거로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세운 교회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33절 하반절에 분명히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교회의 목표는 예수님께서 보내신 영혼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다문화 신앙공동체로 서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사회적 이슈에 대응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 땅의 모든 민족과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주님의 지상명령을 성취하기 위함입니다.

사도행전 1728절에 보면, 바울은 아테네 아레오바고에서 헬라인들에게 설교할 때,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들의 시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자신들의 유대적 관습을 고집하지 않고, 상대방의 언어와 문화 속에서 하나님의 복음을 풀어냈습니다. 이처럼 다문화 신앙공동체는 선교의 최전선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곁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우리는 그들의 본국과 민족에게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놀라운 기회를 얻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032-33절은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강력한 도전입니다. 우리는 다문화 사회라는 새로운 선교적 환경 속에서, 우리에게 맡기신 교회가 걸림돌이 되지 않고, 이를 위해 우리의 편안함과 유익을 내려놓으며, 오직 영혼 구원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교회는 더 이상 한민족, 한 문화만을 위한 공동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족속과 민족이 함께 모여 주님을 찬양하는 곳입니다. 우리의 교회가 그러한 천국의 모형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모든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다문화 신앙공동체로서의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고린도전서 10장 말씀을 통해 다문화 공동체로서 교회의 사명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편안함과 익숙함을 내려놓고, 모든 사람의 유익을 구하며, 걸림돌이 되지 않는 겸손한 마음을 주옵소서. 우리 교회가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모든 민족과 족속을 품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게 하시고, 이 땅의 모든 영혼에게 구원의 통로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이 자리에 모인 모든 동역자에게 주님의 지혜와 능력을 더하셔서, 섬기는 교회와 가정 위에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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