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본문: 누가복음 15:1~7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설교: 재창조하시는 하나님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주시는 위로와 평화가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새롭게 확장하여 새 예배당을 마련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이 교회가 지금까지 장성진 목사님을 중심으로 그리해 왔듯이, 온누리선교 교회가 재창조 되는 장소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예수님은 목수셨습니다. 목수는 나무의 성질에 맞게 나무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목수는 나무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나무를 쉽게 버리지 않습니다.
남들이 보면 다 버려도 될 것 같은데 목수 눈에는 그게 다 쓸만한 귀한 나무로 보이기에 버리지 않고 잘 모아 둡니다.
모아 두었다가 그 나무의 성질에 맞게 쓸 곳이 생기면 다시 잘 다듬어 재창조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를 살펴보면, 그런 목수의 특성이 예수님에게 그대로 잘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 부자 청년, 니고데모 관원 같은 사람들과도 교류하셨지만 당시 ‘죄인’으로 낙인찍혀 버려진 사람들에게 특별히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버려진 사람들 곁에 다가가 그들을 ‘죄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잃어버린 자녀들’이라고 다시 불러 재창조해 주셨습니다.
병들고 몸이 불편한 자, 가난한 자, 나그네, 이방인, 어린이들도 예수님 눈에는 그들도 다른 사람들과 동일한 하나님의 자녀였습니다.
오늘의 본문 누가복음 15장의 말씀에는 같은 주제를 다룬 세 가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선 선한 목자 이야기 / 드라크마 동전 하나를 잃어버린 한 여인 이야기 / 탕자 아들을 잃었다가 되찾은 아버지 이야기.
‘잃어버린 이들을 귀히 여겨 그들을 되찾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함께 기뻐하자’고 말씀합니다. 재창조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누가복음 15장의 주제입니다. 더 나가 그것은 예수님 사역의 궁극적 목표였습니다.
또한 예수 믿는 사람들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은 회당에서 전한 '사명 선포'에 이같이 밝히셨습니다.
누가복음 4장 18절에서,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 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 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 하고" 라며 재창조를 말씀하십니다.
복음서에 ‘잃어버린 사람들’만큼 자주 등장하는 사람들은 ‘사람을 정죄하고 낙인찍어 내어 버린 사람들’입니다.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과 성전과 율법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정죄하고 쓸모없다 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쉽게 사람을 버리는 사람들을 향해, 모두가 귀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선포하셨습니다.
마태복음 3장 9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 자손을 만드신다”고 하셨습니다.
‘권력있고 돈많은 사람만 사람이 아니라 고장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도 사람이다’ 라는 말씀이십니다.
주님은 ‘너와 다르고 혹 네가 세운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사람을 버리지 말라’고, ‘사람이 사람을 버리지 않을 때 모두가 삶을 기쁨으로 느끼며 살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버려진 물건들 대부분은 두 세 곳 만 손보면 다시 쓸 수 있는 물건들로 재창조 될 수 있습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버려야 할 인간은 없습니다.
단지 한두가지 약점이나 흠이 없는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창세기 속에는 창조하시는 하나님보다 훨씬 많이 등장하는 하나님이 있습니다.
‘고쳐 쓰시는 하나님’ ‘접어 주시는 하나님, 재창조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온누리선교 교회가 재창조 역사가 많이 일어나는 교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지상 낙원은 하나님이 만드신 아담과 하와에 의해 망가져 버렸습니다.
창3장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동산을 망가뜨린 아담과 하와를 에덴의 동쪽에서 살게 하셨지 그들을 버리지는 않으셨습니다.
창4장에 하나님은 동생을 죽인 가인도 버리지 않으시고 그가 놋 땅에 가서 살게 해 주셨습니다.
창9장에도 보면 사람들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찬 것을 보시고 노아라는 사람을 택해 인류의 역사를 고쳐서 다시 시작 하셨습니다.
인류의 새로운 시작이었던 노아는 술에 취해 고주망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노아도 버리지 않으시고 노아를 통해서도 당신의 역사를 재창조해 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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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가 새끼고슴도치를 물고...
대한민국 모임의 시작, 네이버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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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말에 “고슴도치도 그 새끼를 함함하게 본다.” 했어요.
한국어 사전에 “함함”이란 “보드랍고 반지르르 하다” 라는 뜻이 있습니다.
내 속에 얼마나 많은 가시가 있습니까? 그럼에도 하나님은 보잘것 없어 보이는 나를 함함하게 보십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아내를 팔아 목숨을 연명하려 했다가 그랄 왕 (지금의 가자지구) 아비멜렉에게 거짓말한 것이 폭로되었지요. 창20장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창20:7.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보내지 아니하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반드시 죽을 줄 알지니라“
믿음의 조상이 기죽고 의기소침해서 초라하게 정죄 당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아비멜렉 앞에서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하십니다. 선지자로 인정해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사람을 하느님께서 이는 내 사람이다 라며 귀하게 여겨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렇게 함함하게 보시는 분이십니다.
야곱은 아버지와 형을 속여 복을 얻으려 했으며, 야곱의 아들들은 이복 동생 요셉을 팔아 먹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문제투성이의 사람들을 버리지 않고 재창조하셨으며, 항상 그들과 함께 역사를 다시 시작하셨습니다. 우리의 흉과 허물은 덮으시고 접어주셨습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시를 하나 소개합니다. 박영희 시인의 “접기로 한다”입니다.
요즘 아내가 하는 걸 보면 섭섭하기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지만 접기로 한다.
지폐도 반으로 접어야 호주머니에 넣기 편하고 다 쓴 편지도 접어야 봉투 속에 들어가 전해지듯 두 눈 딱 감기로 한다.
하찮은 종이 한 장일지라도 접어야 냇물에 띄울 수 있고 두 번을 접고 또 두 번을 더 접어야 종이비행기는 날지 않던가.
살다보면 이슬비도 장대비도 한순간, 햇살에 배겨나지 못하는 우산 접듯 반만 접기로 한다 반에 반만 접어보기로 한다 나는 새도 날개를 접어야 둥지에 들지 않던가.
하나님도 우리를 수도 없이 접어 주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자연, 물건과 사람을 쉽게 쓰고 쉽게 버리는 시대입니다.
뭔가를 훔치고 법을 어기는 것만 죄가 아니라 귀히 여겨야 할 것을 귀히 여기지 않고 버리는 것도 죄입니다.
성도님들은 목사님을 귀하게 여기고 주님을 위해 교회에 헌신하는 모든 선생님들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또한 목사님도 교회의 예배에 성실히 참여하며 마음을 모으고 주님이 세우신 온누리선교교회의 성도님들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의 허물과 실수와 잘못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고쳐 재창조 하시는 주님이 우리의 희망이며 따라야 할 모범입니다.
온누리 선교 교회가 이런 희망이 되기를 예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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