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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절 설교 4) 너무나 지친 우리에게 오시는 사랑 임마누엘 (주일예배 20251221)

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by 온누리선교교회 2025. 12. 21. 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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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말씀 : 마태복음 12123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설교 제목 : 너무나 지친 우리에게 오시는 사랑, 임마누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제 얼굴을 한번 봐주십시오. 많이 피곤해 보이지 않습니까?

요즘 성탄 행사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를 보시는 분들마다 걱정스런 눈빛으로 이렇게 물으십니다. "목사님, 많이 바쁘시죠? 너무 힘들어 보이세요."

그럼 제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렇게 대답합니다. "집사님, 제가 평생 신앙생활 하면서 '마라나타(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가 이렇게 간절한 적이 처음입니다."

그러면 듣는 분들이 다들 "와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립니다. 여러분도 왜 웃는지 아시겠습니까? 주님이 지금 당장 재림하시면, 더 이상 성탄절 행사를 준비 안 해도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오시면 이 모든 복잡하고 힘든 일이 싹 다 끝나버리니까요. готовить праздники! Когда Он придет, вся эта тяжелая работа закончится и наступит покой.

저는 웃자고 한 이야기였는데, 돌이켜보니 이게 진짜 우리의 솔직한 심정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여기 계신 육아에 지친 부모님들, 타향살이에 지친 성도님들도 가끔 그런 생각 하시지 않습니까? ", 누군가 와서 내 이 고단한 짐을 좀 가져갔으면 좋겠다. 이 힘든 상황이 좀 끝났으면 좋겠다."

오늘 우리는 이렇게 지치고 피곤한 몸과 마음을 이끌고 예배의 자리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참 감사한 것은, 첫 번째 성탄절을 맞이했던 요셉도 우리처럼 지치고 두려운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21절은 요셉의 인생 계획이 산산조각 난 상황에서 들려온 음성입니다. 함께 보시겠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인생의 계획을 잘 세우고 성실하게 준비했을 겁니다.

그런데 약혼녀의 임신 소식은 그 모든 계획을 무너뜨렸습니다. 배신감, 사회적 비난에 대한 공포, 파혼에 대한 고민... 요셉의 마음은 지옥 같았을 것입니다.

여기 어린 자녀를 키우시는 부모님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육아 서적도 읽고 예쁜 옷도 사놓으며 완벽한 계획을 세우셨죠?

하지만 막상 아이가 태어나면 어떤가요? 밤새 울어대고, 열이 나고, 이유식을 거부하면 그 계획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부모 자격이 있나?" 하는 자괴감마저 듭니다.

고향을 떠나 이곳에 온 우리 성도님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한국에서 멋지게 성공해야지" 하고 왔지만, 언어의 장벽이나 비자 문제, 문화차이 같은 예기치 못한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부모로서 자녀에게 뭔가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 없는 상황이 너무 많아 가슴이 아프시지요.

우리의 인생은 늘 계획대로 되지 않습니다. 바로 그때, 천사가 전해준 이름이 '예수(구원자)'입니다.

이것은 "요셉아, 네 계획이 망가졌다고 네 인생이 끝난 게 아니다. 내가 너의 그 엉망이 된 상황, 죄와 수치와 절망의 구덩이에서 너를 '건져낼(Save)' 것이다"라는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상황이 완벽하게 준비되었을 때 오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 계획이 실패하고, 내 힘으로 어찌할 바를 모를 때, 바로 그 실패의 현장으로 들어와 우리를 건져주시는 분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왜 이루어진 것입니까? 22절의 말씀을 함께 봅시다.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당신의 계획을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주님의 사람을 통해 말씀해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끊임없이 말씀해 오셨지만, 막상 그 말씀이 내 삶에서 이루어질 때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퍼즐을 맞출 때, 퍼즐 조각 하나만 보면 이것이 하늘인지 바다인지 알 수 없습니다.

요셉에게 약혼녀의 임신은 이해할 수 없는, 버리고 싶은 '이상한 퍼즐 조각' 같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선지자의 말씀을 통해 '큰 그림(완성된 그림)'을 이미 보여주셨습니다.

22절은 요셉이 들고 있는 그 이해할 수 없는 조각이, 사실은 구원이라는 거대한 그림의 핵심 조각임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당장 이해되지 않는 고난이나 상황이 있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가는 과정 속에 있는 소중한 퍼즐 조각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문제에서 건져주실 뿐만 아니라, 그가 겪는 근본적인 외로움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23절입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탄생을 이야기하면서 굳이 이사야 선지자의 오래된 예언을 끌어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요셉에게 이 말씀은 단순히 "신이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아, 네가 마리아를 데려오는 그 험난한 길에, 네가 아비로서 짊어져야 할 그 무거운 책임감 속에 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요셉이 두려움을 이기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이할 수 있었던 힘은 의지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이 '사랑의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사랑의 확신"은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입니다. 돈보다도 더 중요하고, 어쩌면 가족보다 중요할 수 있습니다. 아니, 심지어 교회에 다니면서 종교생활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고린도전서 1313절에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그 사랑의 첫째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 사실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랑하는 자녀가 아프면 부모 마음이 찢어지게 아프지만, 냉정하게 말해 그 육체의 고통을 대신 겪어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은 "인간은 철저히 혼자"라고 말합니다.

절대 착각하지 마십시오. 세상의 그 누구도, 그 어떤 시스템도 온전히 ""를 위해 희생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찾을 뿐입니다. 이것이 냉혹한 현실입니다.

그렇기에 진정한 사랑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나옵니다. 세상은 계산하지만 하나님은 희생하십니다. 그런데 그 사랑을 우리는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크고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정확히 다 아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분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느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그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해 우리 삶의 가장 가까운 곳으로 '임마누엘' 하셨습니다.

우리가 엄마들의 출산의 순간을 함께 생각해봅시다. 산모가 극심한 고통 중에 있을 때, 남편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사실 별로 없습니다. 대신 아파줄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땀에 젖은 아내의 손을 꽉 잡아주며 "나 여기 있어, 걱정 마"라고 말할 때, 산모는 그 손길 하나로 큰 힘을 얻습니다. 문제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함께하는 사람'이 있기에 견디는 것입니다.

고향이 아닌 외국 생활도 그렇습니다. 가족과 떨어져 연말을 보내야 하는 외로움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아파서 누워 있는데 물 한 잔 떠다 줄 사람이 없을 때의 그 서러움...

그런데 그때 누군가 문 앞에 죽 한 그릇을 걸어두고 "아프지 마세요"라는 쪽지를 남겼다면 어떨까요? 그 따뜻함이 우리를 살게 합니다.

임마누엘은 바로 그런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저 하늘 꼭대기에서 "힘내라"고 문자만 보내시는 분이 아닙니다. 가장 낮고 냄새나는 말구유 같은 우리 삶의 한복판으로 직접 내려오셔서, 우리의 손을 잡으시는 분입니다.

"네가 육아에 지쳐 울 때 나도 거기 있었다. 네가 낯선 땅에서 서러워할 때 나도 네 옆에 있었다." 이것이 성탄에 오시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대림절 넷째 주입니다.

성탄절 준비로, 육아로, 생업으로 지치신 여러분. 완벽한 부모, 완벽한 성도가 되려 하지 마십시오. 우리 곁엔 완벽한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공부하는 자리나 일하는 자리에서 1등이 되려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외롭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임마누엘 주님이 우리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이제 며칠 뒤면 그분이 오십니다. 나를 죄에서 건지실 이름 '예수', 나를 끝까지 떠나지 않을 사랑의 이름 '임마누엘'.

제가 처음에 농담처럼 "마라나타"를 외쳤지만, 사실 그 고백대로 주님이 오시면 우리 영혼의 참된 쉼이 시작됩니다. 이 두 이름을 붙들고, 피곤함을 넘어 기쁨으로 성탄을 맞이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성탄을 코앞에 둔 대림절 넷째 주일, 우리의 분주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주님을 바라봅니다.

육아와 생업, 낯선 타향살이의 무게로 인해 지치고 두려운 마음이 우리 안에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 시간, 우리의 짐을 대신 지시는 '예수'님의 구원과, 우리 곁을 떠나지 않으시는 '임마누엘'의 사랑으로 우리를 덮어 주시옵소서.

다가오는 성탄절이 세상의 축제가 아니라, 우리 영혼이 주님 안에서 참된 평안을 누리는 은혜의 날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곁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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