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말씀: 열왕기하 4: 5~6
5. 여인이 물러가서 그의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그들은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6.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아들이 이르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설교: 믿음의 분량만큼 채우시는 하나님
샬롬~오늘 이 예배에 함께 하시는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행복해지기를 바래서 하나님의 축복을 간절히 원합니다.
행복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행복하려고 애를 쓰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행복해지려해도 행복해지던가요? 아닙니다. 세상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시기 위해 축복을 부어주시려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 축복을 받기위해 어떤 그릇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그릇의 크기는 큽니까? 아니면 작습니까? 우리의 그릇의 크기를 정확히 알고 있습니까?
어느 가뭄이 심한 마을에 왕이 찾아와 선포했습니다. "내일 아침, 마을 광장에 큰 우물을 파고 귀한 보물을 가득 채워줄 것이니, 각자 그릇을 가져와서 받아 가시오."
다음 날, 사람들은 저마다 그릇을 들고 모였습니다. 왕의 권위를 의심한 이는 아주 작은 찻잔 하나를, 적당히 믿었던 이는 냄비를 들고 왔습니다. 그러나 왕을 진심으로 신뢰했던 한 가난한 청년은 온 집안 식구들과 함께 커다란 양동이 수십 개를 짊어지고 왔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왕은 약속대로 황금과 보석을 쏟아부어 주었습니다. 찻잔을 가져온 사람은 금방 넘쳐버린 보물을 보며 땅을 치고 후회했습니다. 반면, 큰 양동이를 준비한 청년은 마을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 81:10). 기적의 크기는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가 준비한 믿음의 그릇 크기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을 보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그릇을 펴십시오.”
오늘 본문에는 인생의 벼랑 끝에 선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신실하게 선지자 생도로 살던 남편이 갑자기 죽고, 남겨진 것은 감당할 수 없는 빚뿐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빚을 갚지 못하면 자녀들이 노예로 팔려가야 했습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이 가정이 빚을 지게 된 이유는 당시 아합 왕의 박해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숨겨주고 먹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주님의 일을 하다가 고난을 당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 믿는다더니 꼴좋다"라고 비웃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절망하여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수단과 방법을 찾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에게 달려갔습니다. 그녀는 하나님만이 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여러분, 행복해지려고 애를 써도 자꾸만 비어가는 인생의 그릇 때문에 낙심하고 계십니까?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간절히 믿고 받을 만한 그릇이 필요합니다.
왕하 4장 3절에 엘리사는 여인에게 "이웃에게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많이 빌리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주목할 5절과 6절에서 기적이 실제로 일어납니다. 5절의 말씀입니다.
"여인이 물러가서 그의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그들은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첫째, "문을 닫으라"는 것은 '기도의 밀실'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비웃음과 의심의 소리를 차단하고 오직 하나님과 나만 대면하는 시간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기적을 보려면 세상의 소문을 닫고 기도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18세기 영국의 수잔나 웨슬리의 예화는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19명의 자녀를 키우며 극심한 가난과 싸웠던 수잔나 웨슬리는 혼자만의 기도의 방을 가질 수 없을 만큼 분주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과 독대하기 위해 자신만의 '문'을 만들었습니다. 기도가 필요할 때마다 부엌 한복판에서 앞치마를 머리 위로 뒤집어쓴 것입니다. 아이들은 어머니가 앞치마를 쓰는 순간이 곧 '하나님과 대면하는 문을 닫는 시간'임을 알고 숨을 죽였습니다. 그 좁은 앞치마 속 밀실에서 수잔나는 인생의 빈 그릇을 들고 울며 매달렸고, 하나님은 그녀에게 위로부터 내리는 지혜와 인내의 기름을 부어주셨습니다. 이 밀실의 기도를 통해 요한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라는 위대한 믿음의 거장들이 탄생했습니다.
우리도 세상의 문을 닫고 하나님 앞에 서는 '나만의 밀실'이 필요합니다. 기도의 문을 닫을 때, 비로소 하늘의 문이 열립니다.
둘째, "그는 부었더니"는 '행동하는 순종'입니다. 가진 것이라곤 기름 한 병뿐이었지만, 여인은 순종하여 부었습니다. 기적은 우리가 다 이해한 뒤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해되지 않아도 발을 내디딜 때 시작됩니다.
6절에서 그 기적의 결과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함꼐 보시겠습니다.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아들이 이르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여기 기막힌 영적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기름은 여인이 준비한 그릇이 다 찰 때까지 멈추지 않았습니다. 기름이 모자라서 멈춘 것이 아니라, 담을 그릇이 없어서 멈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하지만, 그 은혜가 담기는 양은 우리의 준비된 그릇만큼입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 은혜를 더 주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미 은혜의 소나기를 쏟아붓고 계십니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을 상상해 보십시오. 하늘에서 내리는 비의 양은 모두에게 공평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간장 종지를 내놓고, 어떤 사람은 커다란 드럼통을 내놓습니다. 비가 그친 뒤 누가 더 많은 물을 가졌겠습니까? 종지를 내놓은 사람이 "왜 나에게는 비를 적게 주셨습니까?"라고 항의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기도가 바로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 식욕만큼, 우리가 준비한 비전의 크기만큼 채워주십니다. 기도의 그릇이 작으면 기적도 작게 임하고, 기도의 그릇이 크면 기적도 크게 임합니다. 하나님은 결코 먼저 멈추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그릇 준비하기를 멈출 때 기적도 멈추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많은 아이들을 봅니다. 함박초등학교에도 문남초등학교에도, 송도초등학교에도 아이들이 학교에서 공부를 합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이 다 우리 온누리선교교회에 다니지 않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부모님들의 결단과 하나님의 인도로 이 신앙 공동체에서 함께 성장합니다. 조그마한 소스 그릇과 같은 아이들이 커다란 대야처럼 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아이들을 점점 더 큰 무대로 이끄시게 한국교회의 손길들을 보내시는 것을 우리는 그동안 보아왔습니다. 성도 되신 부모님들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더 커질 수록 이 아이들이 더 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아이들이 점점 커져가는 큰 무대에 설 때마다 이렇게 외치게 합니다. ”Слава Богу!“ (하나님께 영광을!)
우리가 살아가는데 오늘의 말씀을 연결시켜 생각해봅시다!
빈 그릇에 가득 찬 기름은 여인의 빚을 갚게 했고, 두 아들을 노예의 신분에서 자유하게 했으며, 남은 인생을 살아갈 은혜를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 앞에 빈 그릇뿐인 것 같아 낙심하고 계십니까?
먼저 세상의 문을 닫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으십시오. (기도의 밀실 회복)
여러분이 가진 작은 것, 그 순종의 기름을 먼저 쏟으십시오. (순종의 행동)
무엇보다 믿음의 그릇을 많이, 크게 준비하십시오. (비전의 확장)
여러분이 준비한 그릇이 하나도 남김없이 다 차기까지, 하나님의 은혜의 기름 부으심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의 모든 빈 그릇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채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인생의 빈 그릇을 들고 주님 앞에 선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세상의 소란스러운 소리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게 하시고, 오직 주님과 만나는 밀실의 기도를 회복하게 하옵소서.
우리가 가진 것이 비록 기름 한 병처럼 작고 보잘것없을지라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쏟아부을 수 있는 담대한 믿음을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채워진 은혜를 가지고 세상의 빚을 갚으며, 고통받는 이웃을 살리고,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축복의 통로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풍성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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