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경 본문: 요한계시록 11:15-19
15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16 하나님 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던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7 이르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설교: 최후의 나팔소리
우리가 영화를 보거나 소설을 읽을 때, 가장 기다려지는 순간은 언제입니까? 바로 '결말(Ending)'입니다. 온갖 갈등과 위기가 해소되고, 악당이 심판받으며, 주인공이 승리하는 그 마지막 클라이맥스를 보기 위해 우리는 긴 러닝타임을 견딥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요한계시록의 여정도 그렇습니다. 일곱 인이 떼어지고, 일곱 나팔이 불리는 동안 이 땅에는 전쟁과 기근, 재앙과 핍박이 있었습니다. 앞서 11장 전반부에서는 두 증인(교회)이 죽임을 당하는 것 같은 암울한 순간도 보았습니다.
"도대체 언제 끝나는가? 하나님은 언제 이 세상을 바로잡으시는가?"라는 탄식이 나올 법한 순간입니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붑니다(15절). 성경에서 '7'은 완전수입니다. 일곱 번째 나팔은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되는 순간을 알리는 신호탄입니다. 마치 웅장한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이 시작되듯, 오늘 본문은 우주적 역사의 결말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미리 보여줍니다. 이 말씀을 통해, 혼란한 세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소망을 붙드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5절의 말씀을 함께 봅시다.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 하니
첫 번째로 주목할 것은 '왕권의 교체'입니다. 일곱째 나팔이 울리자 하늘에서 큰 음성들이 선포합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었다!"
여기서 '세상 나라'는 사탄이 공중 권세를 잡고 다스리던 타락한 세상을 의미합니다. 돈과 권력, 폭력과 거짓이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세상은 로마 황제의 것 같고, 오늘날로 치면 강대국이나 거대 기업, 혹은 악한 권력자들의 소유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나팔이 울리는 순간, 선언이 떨어집니다. "이제 이 나라는 그들의 것이 아니다. 이제는 우리 주님과 그리스도의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헬라어 원문을 보면 이 문장이 '과거형(Aorist)'으로 쓰였다는 것입니다. 아직 요한계시록 뒤에는 많은 재앙(대접 심판)이 남아 있는데, 하늘에서는 이미 "되었다(Has become)"라고 완료형으로 선포합니다. 이것은 '예언적 과거'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는 너무나 확실하여 이미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입니다.
영국의 작곡가 헨델은 뇌출혈로 반신불수가 되고 빚더미에 앉아 인생의 밑바닥을 경험했습니다. 그때 그는 성경 말씀을 토대로 곡을 쓰기 시작했는데, 24일 만에 완성한 곡이 저 유명한 오라토리오 <메시아>입니다. 특히 2부의 마지막 곡인 '할렐루야' 합창은 오늘 본문 15절을 가사로 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나라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 되고,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리라." 1743년 런던 초연 당시, 영국의 국왕 조지 2세가 이 대목에서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일국의 왕조차도 "진정한 왕은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인정하며 기립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이 아무리 커 보여도, 결국 이 역사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여러분의 인생의 왕좌에는 누가 앉아 계십니까? 세상의 근심입니까, 아니면 승리하신 주님이십니까?
그 답을 오늘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에는 어떻게 나와 있는지 함께 보시겠습니다. 17-18절의 말씀입니다.
17 이르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
18 이방들이 분노하매 주의 진노가 내려 죽은 자를 심판하시며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또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로소이다 하더라
이 선포를 듣고 보좌 앞에 있던 24 장로(신구약의 모든 성도를 대표하는 존재)가 엎드려 경배하며 찬양합니다.
요한계시록 1장 4절이나 4장 8절을 보면 하나님을 항상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17절에는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라고만 부릅니다.
무엇이 빠졌습니까? "장차 오실 이"라는 표현이 빠졌습니다. 왜일까요? 이제 그분이 오셨기 때문입니다! 기다림은 끝났습니다. 재림의 주님이 통치를 시작하셨기에 더 이상 '오실 분'이 아니라 '오신 분'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에게는 최고의 감격입니다.
주님이 오셔서 하시는 일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창조 세계를 파괴하며, 교회를 핍박하던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 앞에 심판을 받습니다. 다른 하나는 '상 주시는 것'입니다.
18절을 보면, 세상은 '큰 자'에게만 상을 줍니다. 힘 있는 자, 돈 많은 자가 대접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다릅니다. '작은 자나 큰 자나' 상관없습니다. 오직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라면,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섬겼던 그 모든 눈물과 헌신을 하나님께서 갚아 주십니다.
마라톤 선수가 42.195km를 달릴 때, 가장 힘든 순간은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사점(Dead Point)'입니다. 포기하고 싶고 주저앉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멈추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저 끝에 결승선이 있고, 완주자에게 주어질 메달과 영광이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결승선을 통과하는 순간, 그동안 흘린 땀은 영광으로 바뀝니다. 기록원은 선수의 노력을 정확히 기록합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그렇습니다. 지금은 땀이 나고 힘들 수 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일곱째 나팔이 불리는 날, '시상식'이 열립니다. 주님은 여러분의 작은 신음, 남몰래 행한 선행, 교회를 위한 헌신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 상급을 바라보며 오늘을 견뎌내야 합니다.
그렇다면 사도요한에게 주님은 무엇을 보여주십니까? 19절의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19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또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더라
마지막으로 요한은 하늘 성전이 열리는 환상을 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언약궤'를 봅니다. 이 장면은 유대인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전율을 주는 장면입니다.
구약 시대 언약궤는 하나님 임재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주전 586년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때 언약궤는 사라졌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의 마음속에 언약궤는 '상실감'과 '하나님의 떠나심'의 상처였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날 하늘 성전이 열리니, 그곳에 언약궤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은 그분의 언약(약속)을 절대 잊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수천 년이 지나도, 세상이 뒤집혀도, 하나님이 자기 백성과 맺은 구원의 약속은 영원히 유효하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언약궤와 함께 번개, 우렛소리, 지진, 큰 우박이 동반됩니다. 이것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강림하실 때 나타났던 현상입니다. 하나님의 위엄과 권능을 나타냅니다. 세상은 하나님이 없다고 조롱하고, 침묵하시는 하나님을 무시했습니다. 그러나 성전이 열리는 날, 온 세상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분의 두려운 위엄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에게 언약궤는 '보호와 약속 성취'의 증거이지만, 불신 세상에게는 '심판과 두려움'의 징조가 됩니다.
배가 폭풍우를 만났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배가 얼마나 화려하냐가 아니라, 그 배가 든든한 바위에 '닻(Anchor)'을 내리고 있느냐입니다. '언약궤'는 우리 영혼의 닻입니다. 세상이 요동치고, 뉴스를 보면 불안한 소식뿐이지만, 하늘 성전에 있는 언약궤는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약속, 끝까지 지키신다는 그 언약은 취소되지 않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시선을 땅의 혼란함에서 떼어, 열린 하늘 성전의 언약궤로 향하십시오. "상황은 변해도 언약은 변하지 않는다." 이 믿음이 우리를 살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맺겠습니다.
요한계시록 11장의 일곱째 나팔 소리는 우리에게 세 가지 확신을 줍니다.
세상 나라는 결국 무너지고, 주님의 나라가 영원히 섭니다. 지금 보이는 세상의 권력에 압도당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셔서 상과 벌을 내리십니다. 충성된 주의 백성들에게 예비된 상급이 있음을 기억하고 인내하십시오.
하나님의 언약은 신실합니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언약궤가 하늘 성전에 있듯,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우리는 아직 전쟁 중에 있습니다. 현실은 여전히 팍팍하고 고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을 들어 하늘을 보십시오. 하늘에서는 이미 승리의 팡파르가 울렸습니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었다!"
이 승리의 선포를 가슴에 품고, 이번 한 주간도 패배자가 아닌 승리자로, 비겁자가 아닌 당당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함께 기도하곘습니다.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일곱째 나팔 소리를 통해, 세상 나라가 결국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가 될 것임을 미리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는 주님의 상급을 바라는 자들입니다. 작은 자를 기억하시고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사오니, 오늘 우리가 흘리는 헌신의 땀방울과 인내의 눈물을 주님께서 닦아 주시고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신실하신 언약의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늘 성전을 바라보며 담대히 나아가게 하옵소서.
다시 오셔서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실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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