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선교교회
경계를 넘는 은혜의 자리, 교회 (대하 6:35, 주일예배 20260208) 본문

성경말씀: 역대하 6:35
주는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보시옵소서
설교: 경계를 넘는 은혜의 자리, 교회
요즘 저는 “교회”란 무엇인가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앞에는 영어 학원이 있고, 바로 옆에는 보습 학원이 있습니다. 또 그 옆에는 러시아어 학원도 자리하고 있지요. 평일 낮 시간이 되면 우리 주일학교 아이들은 이 예배당 안에서 찬양 연주를 들으며 공부도 하고 친구들과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데 교회 밖을 내다보면, 앞 건물 학원들에도 정말 많은 아이가 공부를 하러 오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런 풍경을 본다면, 아마도 학원이나 교회나 비슷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세상의 학원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그렇다면 우리 온누리선교교회는 어떤 곳이어야 할까요? 우리는 어떤 정체성을 가져야 할까요? 그 답을 오늘 본문인 역대하 말씀을 통해 함께 찾아보고자 합니다.
함께 보시겠습니다. 역대하 6장 35절입니다.
“주는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보시옵소서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읽은 역대하 6장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찬란했던 순간인 솔로몬 성전의 완성과 봉헌식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수조 원의 가치가 넘는 금과 백향목으로 지어진 이 웅장한 건물 앞에서 솔로몬은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는 화려한 건물을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손을 폈습니다.
솔로몬은 알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화려한 성전이라도 하나님을 그 건물 안에 다 가둘 수 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성전의 진정한 가치는 건물의 외형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곳이 바로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는 기도의 통로'가 된다는 데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솔로몬은 기도의 지평을 두 가지 방향으로 넓힙니다. 하나는 '나와 상관없는 타인(이방인)'을 향한 사랑이고, 또 하나는 '치열한 삶의 현장(전쟁터)'에서 붙들어야 할 소망입니다. 솔로몬은 놀랍게도 '이방인'을 위해 먼저 기도합니다.
역대하 6장 32절을 보면,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않은 이방인에게 대하여도..."라고 간구합니다. 이 기도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선언이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신은 철저히 특정 민족만의 수호신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솔로몬이 고백하는 하나님은 결코 국경에 갇힌 분이 아니었습니다.
역대하 6장 33절에서 솔로몬은 이방인들이 '주의 큰 이름과 능한 손과 펴신 팔'을 보고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능한 손과 펴신 팔'은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셨던 하나님의 강력한 구원을 상징합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와 그 소문은 성전의 담장을 넘어 멀리 퍼져나갑니다. 솔로몬의 간구는 명확합니다. "하나님, 이방인이 와서 부르짖을 때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것처럼 똑같이 응답해 주십시오!"
이것이 바로 복음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끼리'만 누리는 폐쇄적인 클럽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모르는 '먼 지방'의 사람들도 주님의 이름을 알고 경외하기를 원하십니다.
요즘 어딜 가나 카페에서 와이파이를 사용합니다. 어떤 카페는 비밀번호를 아주 복잡하게 걸어두고 '손님' 외에는 절대 접속하지 못하게 합니다. 심지어 카페 밖으로 신호가 나가지 않게 전파 차단막을 치기도 하죠. 그런데 어떤 카페 사장님은 일부러 비밀번호를 걸지 않습니다. 카페 안에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길을 지나가다 급하게 연락할 곳이 필요한 나그네들도 신호를 잡아서 쓸 수 있게 배려한 것이죠.
솔로몬이 꿈꾼 성전은 바로 이런 '개방형 와이파이'와 같았습니다. "우리 민족만 이 복을 누리게 해주세요"가 아니라, "하나님, 저 담장 밖에서 헤매는 이방인들도 이 기도의 신호를 잡게 해주세요. 그래서 그들도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래야 합니다. 내 가족, 내 교회라는 담장을 넘어 세상의 소외된 이들을 향해 신앙의 신호를 항상 열어두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솔로몬은 아주 현실적인 문제를 다룹니다. 바로 '전쟁'입니다. 역대하 6장 34절을 보면 "주의 백성이 그 적국과 더불어 싸우고자 하여"라고 시작합니다. 평화로운 성전 안에서의 기도가 아니라, 먼지 날리고 비명이 오가는 전쟁터에서의 기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할 표현은 "주께서 보내신 길로 나갈 때"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 고난을 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나아간 길 위에서도 전쟁을 만납니다. 주님이 가라고 하신 직장에서 상사나 동료와 갈등을 겪기도 하고, 주님이 세워주신 가정에서 예기치 못한 폭풍을 만나기도 합니다.
이때 솔로몬은 해결책을 제시합니다. "성전 있는 쪽을 향하여 여호와께 기도하거든." 전쟁터 한복판에서는 성전이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방향'을 정하라는 것입니다. 내 눈앞의 적군을 보며 떨기보다, 나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이 계신 곳을 향해 마음의 초점을 맞추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35절의 약속이 임합니다.
"주는 하늘에서 그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일을 돌보시옵소서." (대하 6:35)
그렇습니다. 우리의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가 싸우는 현장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우리의 삶에 직접 개입하여 우리를 '돌보시는' 분입니다.
여러분, 혹시 아십니까? 깊은 바닷속을 항해하는 잠수함은 창문이 없습니다. 밖이 보이지 않습니다. 거친 조류가 몰아치고 앞에 거대한 암초가 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런 잠수함이 방향을 잡는 유일한 방법은 내부에 있는 '자이로 나침반'을 믿는 것입니다. 외부 환경이 아무리 소용돌이쳐도 나침반은 정확한 북쪽을 가리킵니다.
우리의 삶이 바로 이 잠수함과 같습니다. 당장 내일 일이 보이지 않고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것 같은 전쟁터에 서 있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창밖을 보며 절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기도의 나침반'을 꺼내 성전을 향해 방향을 맞추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지금 이 전쟁터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주님을 향합니다." 이 짧은 고백이 우리를 침몰하지 않게 붙들어주는 유일한 힘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기도의 지경을 넓히고, 기도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함께 깊이 생각해봅시다! 솔로몬의 기도는 오늘 우리에게 두 가지 숙제를 줍니다.
첫째, 기도의 지경을 넓히십시오. 내 기도 제목의 리스트에 나와 상관없는 이들,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 그리고 복음을 모르는 열방의 이름이 들어가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 '이방인'의 부르짖음에도 응답하고 싶어 하십니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넓은 마음을 닮아가게 됩니다.
둘째, 기도의 현장을 절대로 사수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일터가 전쟁터입니까? 육체의 질병과 싸우고 계십니까? 자녀의 문제로 치열한 전투 중이십니까? 그곳에서 성전을 향해 무릎을 꿇으십시오. "하나님, 주께서 보내신 길인데 너무 힘듭니다. 저의 사정을 돌보아 주시옵소서!"라고 부르짖으십시오. 하늘에서 들으시는 하나님은 결코 여러분을 혼자 싸우게 두지 않으십니다.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 여러분의 마음입니다. 온누리선교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마음들이 모인 곳입니다.
우리 교회는 돈으로 세워진 곳이 아니라, 믿음으로 세워진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곳입니다. 그 은혜 가운데 우리가 참된 평안을 얻고 세상을 이길 능력을 받는 곳입니다.
이 교회는 심지어 예수를 믿지 않는 자들의 기도 또한 들으시고 응답하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
왜 우리가 이토록 좋은 교회를 포기하겠습니까? 왜 우리가 하나님의 집을 떠나겠습니까? 왜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거절하겠습니까?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의 마음 성전에서 세상을 향한 사랑의 기도가 반드시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를 괴롭게 하는 고난과 고통의 현장을 이기는 승리의 기도가 회복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우리의 모든 형편과 사정을 아시는 여호와 하나님, 오늘 솔로몬의 기도를 통해 우리의 좁은 시야를 깨뜨려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이스라엘의 울타리를 넘어 온 열방을 품으시는 하나님의 넓은 사랑을 본받아, 이웃을 향해 기도의 손을 들게 하옵소서.
또한 치열한 삶의 전쟁터에서 낙심하지 않고, 오직 주님 계신 곳을 향해 마음의 방향을 정하여 승리하는 용사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며 우리의 일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사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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