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선교교회
사순절 설교 1) 깊은 구덩이에서 들리는 주의 음성 (렘 3:55-57) 본문
성경 본문 :예레미야애가 3:55-57
여호와여 내가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나이다
주께서 이미 나의 음성을 들으셨사오니 이제 나의 탄식과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가리지 마옵소서
내가 주께 아뢴 날에 주께서 내게 가까이 하여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하셨나이다

설교 본문: 깊은 구덩이에서 들리는 주의 음성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부터 우리는 사순절의 첫 주일을 맞이합니다. 사순절은 주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고난을 묵상하며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40일간의 절기입니다. 흔히 사순절을 '광야의 시간'이라고 부릅니다.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곳이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오직 하나님 한 분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예레미야애가는 성경에서 가장 슬픈 책 중 하나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눈앞에서 조국 이스라엘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성전은 파괴되었고,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갔으며, 거리에는 굶주려 죽어가는 아이들의 신음이 가득했습니다. 이 절망의 끝자락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내가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나이다." (55절)
우리도 깊은 삶의 구덩이를 겪은 적이 있습니다. 아니면 지금 그 구덩이 속에 있으신 분도 계실 겁니다. 이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어떠신 분입니까?
어느 날 한 사람이 깊은 구덩이에 빠졌습니다.
아무리 올라오려고 해도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때 세 사람이 지나갔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구덩이를 내려다보며 말했습니다.
“왜 조심하지 않았습니까? 앞으로는 더 잘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냥 떠났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말했습니다.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기도만 하고 역시 떠났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사람은 구덩이 안으로 직접 내려왔습니다.
구덩이에 빠진 사람이 놀라 말했습니다.
“아니, 왜 당신까지 내려옵니까? 이제 우리 둘 다 못 나가잖아요!”
그 사람은 미소 지으며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여기서 나가는 길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당신을 데리고 나가겠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은 구덩이에 빠지면 위를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구덩이는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드는 장소입니다. 그래서 그 구덩이 같은 가장 깊은 곳에서 가장 큰 은혜가 시작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삶의 '구덩이'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지, 그리고 하나님은 그곳에서 우리에게 어떻게 응답하시는지 깊이 묵상해 주님께서 주시는 큰 능력을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55절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심히 깊은 구덩이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나이다
먼저 55절의 '심히 깊은 구덩이' 를 주목해 보십시오. 히브리어로 '보르 타흐티요트'라고 하는 이 단어는 단순히 땅이 파인 곳이 아니라, 지하의 가장 낮은 곳,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진 장소를 의미합니다. 고대 근동에서 구덩이는 감옥으로 쓰이기도 했고, 시신을 던져넣는 구덩이를 뜻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도 이런 구덩이가 있지 않습니까?
열심히 살았지만 뜻하지 않은 질병의 진단을 받았을 때.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홀로 남겨졌을 때.
경제적인 파탄으로 인해 내일이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갇혔을 때. 그곳이 바로 본문이 말하는 '심히 깊은 구덩이'입니다. 이 구덩이의 특징은 내 힘으로는 도저히 기어 올라갈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사방은 벽으로 막혀 있고, 오직 위로 뚫린 하늘만이 유일한 통로인 상태입니다.
세계적인 작가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미제라블』에는 주인공 장발장이 하수구의 진흙탕 속을 헤매는 장면이 나옵니다. 냄새나고 어두운 그곳에서 그는 죽음의 공포를 느낍니다.
우리 인생도 때로는 화려한 도심의 거리 아래 숨겨진 어두운 하수구 같은 순간을 지납니다. 하지만 예레미야는 그 구덩이에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거기서 비로소 '주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구덩이는 절망의 종착역이 아니라, 기도가 시작되는 출발역이었습니다.
56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이미 나의 음성을 들으셨사오니 이제 나의 탄식과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가리지 마옵소서.
여기서 우리는 예레미야의 놀라운 영적 통찰을 발견합니다. 그는 지금 구덩이 밖으로 탈출한 상태가 아닙니다. 여전히 구덩이 밑바닥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과거형으로 고백합니다. "이미 나의 음성을 들으셨사오니!"
이것이 사순절을 지나는 우리의 믿음이어야 합니다. 기도는 상황이 변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목소리를 듣고 계심을 확신하기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
탄식'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나아카'로, 너무 고통스러워 말이 되지 않는 신음을 뜻합니다. '부르짖음'은 도움을 요청하는 절규입니다.
하나님은 세련된 신학적 문장으로 드리는 기도를 기다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구덩이 속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 눈물 섞인 한숨, "주님, 저 좀 살려주세요"라는 짧은 외마디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한 어린아이가 밤중에 악몽을 꾸고 울며 일어납니다. 아이는 엄마에게 자신이 왜 무서운지, 꿈의 내용이 무엇인지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저 울 뿐입니다. 하지만 안방에서 그 소리를 듣는 어머니는 즉시 달려옵니다.
왜일까요? 아이의 울음소리에는 모든 사정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의 눈물은 하나님이 가장 명확하게 알아들으시는 하늘의 언어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57절은 오늘 설교의 절정이자 복음의 핵심입니다. 함께 보겠습니다.
내가 주께 아뢴 날에 주께서 내게 가까이 하여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하셨나이다.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가장 힘든 것은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질 때입니다. "하나님, 대체 어디 계십니까?"라고 울부짖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증언합니다. 우리가 "주여!"라고 부르는 그 순간, 주님은 이미 우리 곁에 '가까이' 와 계십니다.
이 '가까이 오심'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입니다. 우리를 구덩이 밖에서 지켜보며 "힘내라, 올라와라"라고 훈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친히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입고, 우리와 똑같은 고통의 구덩이, 즉 십자가라는 죽음의 구덩이 속으로 걸어 들어오신 분이 바로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분이 구덩이 밑바닥에 떨고 있는 우리를 안아주시며 말씀하십니다. "무서워하지 말라."
유명한 '모래 위의 발자국'이라는 시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인생의 고난 중에 돌아보니 발자국이 한 쌍밖에 없어서 "주님, 왜 제가 힘들 때 저를 혼자 두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 주님은 "그 발자국은 내 발자국이란다. 내가 너를 업고 걸었기 때문이지"라고 답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순절은 나를 업고 구덩이를 지나시는 주님의 발자국을 발견하는 절기입니다.
성도 여러분,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순절 첫 주일, 혹시 여러분 중에 깊은 구덩이에 빠진 것 같은 절망을 느끼는 분이 계십니까?
기억하십시오. 구덩이는 하나님을 만나는 지성소가 될 수 있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화려한 말이 없어도 좋습니다. 그저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시작하십시오.
들으심을 확신하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의 신음 소리 하나 놓치지 않으십니다.
곁에 계신 주님을 의지하십시오. 주님은 이미 구덩이 속 여러분 곁에 와 계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내 아들아, 내 딸아,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한다."
이번 40일의 여정 동안, 구덩이 속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주님의 손을 꼭 붙잡고, 부활의 영광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에벤에셀의 하나님, 인생의 벼랑 끝과 깊은 구덩이 속에서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그 큰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고난의 한복판에서 신음할 때, 주님께서 이미 곁에 와 계심을 믿음의 눈을 들어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무서워하지 말라"는 주님의 음성이 우리 삶의 모든 불안과 공포를 몰아내고, 참된 평안을 얻게 하옵소서.
이번 사순절이 단순히 형식적인 절기가 아니라,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며 우리 영혼이 새롭게 거듭나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다시 사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온누리선교교회 > 한국어예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요한계시록 강해 32) 바다에 올라온 짐승 (수요기도회 20260304) (0) | 2026.03.04 |
|---|---|
| 사순절 설교 2) 비틀거리는 역사 속에서 붙잡으시는 하나님 (시 94:17-19, 주일예배 20260301) (1) | 2026.02.28 |
| 세상의 지혜를 넘어,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린도전서 2:5-6, 주일예배 20260215) (0) | 2026.02.14 |
| 요한계시록 강해 31) 이미 이긴 전쟁을 싸우는 성도 (수요기도회 20260211) (0) | 2026.02.11 |
| 경계를 넘는 은혜의 자리, 교회 (대하 6:35, 주일예배 20260208) (1) | 2026.02.07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