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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누리선교교회

사순절 설교 2) 비틀거리는 역사 속에서 붙잡으시는 하나님 (시 94:17-19, 주일예배 20260301) 본문

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사순절 설교 2) 비틀거리는 역사 속에서 붙잡으시는 하나님 (시 94:17-19, 주일예배 20260301)

온누리선교교회 2026. 2. 28. 23:33

 

성경 본문 :시편 94:17-19

여호와께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내 영혼이 벌써 적막 중에 처하였으리로다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고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내 속에 생각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설교:  비틀거리는 역사 속에서 붙잡으시는 하나님 
     
오늘 우리는 매우 특별한 주일을 맞이했습니다. 
우리를 위해 고난의 길을 걸으신 그리스도를 묵상하는 사순절 두 번째 주일이자, 한국인, 고려인, 조선족, 북한인민 등의 공통적으로 아픈 역사가 있는 날입니다. 동시에 오늘은 한민족이 나라를 잃고 일제의 어두운 압제 속에서 빛을 향해 일어났던 3·1 운동 107주년 기념일입니다.
사순절은 우리 개인의 연약함과 죄성을 직면하는 시간입니다. 3·1절은 우리 한민족이 겪었던 고난과 그 속에서 나타난 신앙적 결단을 반드시 기억해야하는 날입니다. 
오늘 본문 시편 94편은 바로 그런 상황, 즉 '악이 승리하는 것 같고 의인은 박해받으며, 발은 미끄러지고 속에는 불안한 생각이 가득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쓰였습니다.
인생의 비탈길에서 비틀거리는 우리에게, 그리고 역사의 거친 파도를 넘는 우리 한민족에게 하나님은 어떤 손길을 내밀고 계실까요? 오늘 주님께서 주신 말씀을 통해 크나크신 하나님의 능력과 위로를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17절의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내 영혼이 벌써 적막 중에 처하였으리로다
     
시인은 "여호와께서 도움이 되지 아니하셨더면 내 영혼이 벌써 적막 중에 처하였으리로다"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적막(דּוּמָה, Dumah)'은 단순히 조용한 상태가 아닙니다. 이는 죽음의 땅, 무덤, 혹은 존재가 완전히 잊히는 허무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107년 전 우리 민족의 상황이 바로 이 '적막'이었습니다. 나라를 잃고, 말과 이름을 빼앗기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위기였습니다. 그때 기독교인들은 인구의 1.3%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도움'을 신뢰하며 일어났습니다.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16명이 기독교인이었던 이유는, 그들이 믿는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 자의 하나님'이었기 때문입니다. 
일제의 총칼 앞에 '침묵의 땅(적막)'으로 끌려갈 위기에서,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그들은 두려움 없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미 절망이라는 적막 속에 침몰했을 것입니다.
이러한 비명을 18절에서 시인은 비명을 지릅니다. 함께 보시겠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고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 히브리어로 '미트(mût)'는 흔들리다, 휘청거리다는 뜻입니다. 내 힘으로 서 있으려 하지만 바닥이 진흙탕이거나 빙판길이라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상태입니다. 그때 즉각적으로 개입하는 것이 '주의 인자하심(חֶסֶד, Hesed)'입니다.
'인자하심(헤세드)'은 단순히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백성을 끝까지 책임지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입니다. 내가 잘나서 붙들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자녀이기에 붙드시는 것입니다.
     
사순절의 주님이신 예수님을 보십시오. 골고다 언덕을 오르실 때 주님은 채찍질과 십자가의 무게로 인해 수없이 발이 미끄러지셨습니다. 육신은 비틀거렸으나, 주님은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헤세드'를 완성하기 위해 그 길을 끝까지 가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가 인생의 빙판길에서 미끄러질 때 어떤 기분인지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우리가 "주님, 저 이제 더 못 버팁니다. 미끄러집니다!"라고 소리칠 때, 십자가에서 못 박히셨던 그 거친 손이 우리의 손목을 강하게 낚아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잘 아시는 주님에 대해 시편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9절입니다.
내 속에 생각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외부적 고난보다 우리를 더 괴롭히는 것은 내면의 폭풍입니다. 19절의 '생각(שַׂרְעַפַּי, Sarappay)'은 복잡하게 얽힌 근심,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을 뜻합니다. 이때 하나님은 논리적인 해결책 이전에 '주의 위안(תַּנְחוּמֶיךָ, Tanchum)'을 주십니다.
그렇다면 ‘위안’은 어떤 것을 말하는 걸까요?
'위안'의 히브리적 의미는 아이의 등을 토닥여 달래는 어머니의 손길을 연상시킵니다. 상황이 변하기 전에 마음의 평강을 먼저 주시는 은혜입니다.
     
이 시간 우리는 오늘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가지고 같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인생에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고난의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지 말입니다. 
우리 한민족의 역사에서 중요했던 3·1 운동을 생각하면서 사순절을 통해 꺠닫게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첫째, 정직하게 나의 '미끄러짐'을 시인하십시오.
현대인은 강한 척하는 데 익숙합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약해도 괜찮습니다. "주님, 경제적인 문제로 발이 미끄러집니다. 
관계의 갈등으로 마음이 무너집니다."라고 말하십시오. 
3·1 운동의 선조들이 "우리는 힘이 없으나 하나님은 살아계신다"라고 고백했듯, 우리의 무능을 고백할 때 하나님의 '헤세드'가 시작됩니다.
둘째, '생각의 감옥'에서 나와 '주의 위로'로 채우십시오.
사순절 기간 동안 미디어 금식이나 기도를 통해 내 안의 '많은 생각'들을 걸러내십시오. 
걱정이 나를 장악하게 두지 말고, 그 자리에 하나님의 약속을 채워 넣으십시오. 시인은 생각이 많을 때 오히려 영혼이 '즐겁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상황이 좋아져서가 아니라, 주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안도감 때문입니다.
셋째, '역사의 증인'으로 사십시오.
우리 민족의 독립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미끄러지는 이 민족을 붙드신 결과입니다. 
이제 우리는 개인의 안위만을 위해 기도하는 단계를 넘어, 전쟁, 기아, 폭정과 같은 이 땅의 아픔과 열방의 적막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온누리선교교회는 주위에 있는 많은 이웃들에게 이 하나님의 '헤세드'를 전하는 통로가 되어야 할 거십니다. .
     
성도 여러분, 인생의 길은 험합니다. 때로는 나라 전체가 흔들리기도 하고, 때로는 내 영혼의 밑바닥이 무너져 내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오늘 시편 기자의 확신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미끄러진다"고 말하는 바로 그 찰나에 하나님의 손은 이미 움직이고 계십니다.
3·1 운동의 고난이 광복의 기쁨으로 이어졌듯, 사순절의 눈물은 부활의 영광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흔들리는 발을 붙잡으시고, 복잡한 마음을 어루만지시는 주님과 함께 이번 한 주간도 당당히 걸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역사의 주인이시며 우리 영혼의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107년 전 이 민족의 비명 소리를 들으시고 적막 속에서 건져주심을 감사합니다.
오늘날 수많은 생각과 걱정으로 잠 못 이루는 우리 성도들의 마음을 주의 위안으로 어루만져 주옵소서.
발이 미끄러지는 위기의 순간마다 주님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강하게 붙들고 계심을 믿음으로 보게 하소서.
사순절의 깊은 묵상을 통해 우리를 위해 고난받으신 예수님의 사랑을 다시금 뜨겁게 회복하게 하시며,
어떠한 어둠 속에서도 부활의 소망을 노래하는 증인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