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선교교회
요한계시록 강해 32) 바다에 올라온 짐승 (수요기도회 20260304) 본문

성경 본문: 요한계시록 13:1-7
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2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3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4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5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6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7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설교: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
성도 여러분, 지난 12장에서 우리는 하늘 전쟁에서 패배하고 땅으로 내쫓긴 용(사탄)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분노한 용은 이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과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13장 1절에서, 그 용의 부름에 응답하듯 바다에서 한 '짐승'이 올라옵니다.
우리는 흔히 '적그리스도'나 '짐승'이라고 하면 공포 영화에 나오는 괴물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짐승의 실체는 훨씬 더 매혹적이고, 위협적이며, 우리 일상에 깊숙이 침투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세상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2절의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1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신성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더라
2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요한은 바다에서 나오는 한 짐승을 봅니다.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입니다. 이는 다니엘 7장에 나오는 네 짐승(사자, 곰, 표범 등)의 특징을 모두 합쳐놓은 모습입니다.
이 짐승은 단순히 괴물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는 적대적인 국가 권력과 체제를 상징합니다. 뿔(권세)과 면류관(통치권)을 가졌으며, 그 머리에는 '신성모독 하는 이름들'이 가득합니다. 이는 스스로를 신의 반열에 올리려 했던 로마 황제들과, 오늘날 하나님 없이도 완벽한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고 믿는 모든 인본주의적 권력을 의미합니다.
용(사탄)은 자신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이 짐승에게 줍니다. 즉, 눈에 보이는 악한 통치와 압박 이면에는 영적인 사탄의 배후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명품을 똑같이 베낀 소위 'A급 짝퉁'은 전문가가 아니면 구별하기 어렵습니다. 사탄은 결코 흉측한 모습으로만 오지 않습니다. 가장 정의로워 보이는 명분,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 가장 매력적인 문화의 옷을 입고 나타납니다. 짐승이 '바다'(당시 사람들에게는 혼돈과 두려움의 대상)에서 올라왔다는 것은, 세상의 혼란을 틈타 "내가 너희를 구원하겠다"며 나타나는 구세주 콤플렉스를 가진 권력을 상징합니다. 우리는 그 화려한 겉모습(뿔과 면류관) 뒤에 숨은 '신성모독'의 본질을 분별해야 합니다.
그럼 이어서 성경 본문의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3-4절의 말씀입니다.
3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르고
4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짐승의 머리 하나가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상처가 낫게 됩니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따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흉내 낸 '사탄의 패러디'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을 모방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듯, 세상 권력이나 이념도 한때 끝난 것처럼 보이다가 다시 강력하게 부활하여 사람들의 맹목적인 추종을 끌어냅니다.
사람들은 짐승의 '능력'에 압도되어 용과 짐승을 경배합니다.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라고 외칩니다. 이는 오직 하나님께만 드려져야 할 찬양을 가로채는 행위입니다.
난공불락의 성 트로이를 무너뜨린 것은 정면 공격이 아니라 거대한 '목마'였습니다. 트로이 사람들은 그것을 승리의 전리품이자 신비로운 선물로 여겨 성 안으로 들였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성을 파괴할 군사들이 숨어 있었습니다. 짐승의 '나은 상처'는 세상이 우리에게 던지는 달콤한 유혹이나 기적 같은 해결책과 같습니다. "이것만 있으면 경제가 살아난다", "이 기술이 영생을 줄 것이다"라는 속삭임은 우리 영혼을 파괴하기 위해 성 안으로 들어오는 트로이 목마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들에게는 어떠한 고난이 있게 될까요? 5-7절 말씀입니다.
5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6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비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사는 자들을 비방하더라
7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짐승은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습니다. 그는 입을 벌려 하나님을 비방하고,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됩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받았으며'(It was given to him)라는 표현입니다(5, 7절). 짐승이 미쳐 날뛰는 것 같지만, 그 권세는 하나님이 정하신 한시적인 시간(42개월) 내에서만 허용된 것입니다.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된다"는 말씀은 충격적입니다. 지상에서 교회는 때로 세상 권력에 짓밟히고 패배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순교자가 나오고, 예배당이 폐쇄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군사적인 패배일 뿐, 영적인 패배가 아닙니다.
야구 경기에서 9회 말 투아웃 상황, 점수 차가 크게 벌어져 패배가 확실해 보일 때가 있습니다. 상대 팀(짐승)은 기세등등하게 환호합니다. 그러나 만약 이 경기가 이미 우리가 승리하기로 각본이 짜여진 녹화 중계라면 어떨까요? 지금 당장 타자가 삼진을 당하는 모습이 중계되더라도 우리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결말을 알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고난은 '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과정'일 뿐, 결코 '결과'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짐승의 활동 시간을 정확히 계산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 이후 10절은 이렇게 결론짓습니다.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짐승의 시대, 즉 세속 권력이 하나님을 조롱하고 성도를 핍박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영적 분별력: 세상의 화려한 성공과 권력 이면에 사탄의 조종이 있음을 간파해야 합니다. "누가 이와 싸우리요?"라며 세상 앞에 무릎 꿇지 마십시오.
인내하는 믿음: 성도가 세상에서 일시적으로 패배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우리의 이름은 창세 이후로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짐승은 강해 보이지만 결국 심판받을 존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영원한 승리자 그리스도께 속해 있습니다. 이 자부심으로 무장하여, 어떤 유혹과 압박 속에서도 그리스도인답게 당당히 걸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직면한 영적 전쟁의 엄중함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세상은 짐승처럼 강한 힘과 매혹적인 기적으로 우리를 미혹하며, 때로는 우리의 신앙을 위협하고 굴복시키려 합니다.
주님, 우리에게 솔로몬과 같은 지혜를 주셔서 세상의 화려함 속에 숨겨진 짐승의 목소리를 분별하게 하옵소서. 눈에 보이는 권력 앞에 비겁하게 무릎 꿇지 않게 하시고, 오직 만왕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끝까지 따르게 하옵소서. 비록 우리가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고 지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이미 승리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끝까지 인내하는 믿음을 더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삶의 주권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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