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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설교 4) 고난의 신비 (행 3:18 주일예배 20260315) 본문
온누리선교교회/한국어예배
사순절 설교 4) 고난의 신비 (행 3:18 주일예배 20260315)
온누리선교교회
2026. 3. 15. 05:50
성경 본문 : 사도행전 3:18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가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설교: 고난의 신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사순절 네 번째 주일입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나요? 사실 ‘평안’이라는 단어보다 ‘무사히’ 보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아침에 일어나 야심 차게 세웠던 계획들이 무색하게 사라져 버리고, 오롯이 나를 위해 쓰려던 시간들이 증발해 버리는 경험을 하곤 합니다.
어떤 분들은 말씀하십니다.
“목사님, 제 삶은 마치 끝없는 고난의 행군 같아요.”
맞습니다.
우리 교회가 있는 이 건물 2층에 소아과가 있습니다.
주일에는 아주 조용한 건물이지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아이를 데리고 오는 젊은 부부들이나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늘 보게 됩니다.
아이의 손을 잡고 오거나 울어대는 아이를 달래며 안고 오는 부모들은, 아마 아이를 갖기 전에는 정말 자유로운 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이 때문에 쩔쩔매고 가슴 아파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을 지극히 사랑하는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나의 자유를 제한하고 타인을 위해 내 생명을 나누어주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고난이 어쩌다 일어난 갑작스러운 사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 속에 “이루어진 일”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일상 속에 찾아오는 고난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를 빚어가시는 정교한 계획임을 오늘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3장 18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가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
본문은 고난이 “미리 알게 하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왜 구원을 위해 ‘영광’ 대신 ‘고난’을 설계하셨을까요?
그것은 고난을 통과하지 않고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깊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단단하고 좋은 목재로 쓰이는 떡갈나무는 평탄한 날에만 자라지 않습니다.
모진 비바람과 추운 겨울을 견뎌낸 해일수록 그해의 나이테는 더 좁고 단단하게 형성됩니다.
가뭄과 추위라는 ‘고난’이 나무의 밀도를 높여주는 것입니다.
부모가 되기 전 우리의 신앙이 그저 화려한 잎사귀였다면,
자녀를 위해 밤잠을 설치고 내 욕망을 내려놓는 ‘육아의 고난’은 우리 영혼에 단단한 나이테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단순히 ‘부모’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 ‘깊이 있는 성도’로 빚어가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겪으신 고난의 핵심은 ‘공감’과 ‘대신함’입니다.
사도행전이 증언하는 메시아의 고난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아픔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오신 하나님의 결단이었습니다.
부모가 자녀의 아픔을 대신 아파하고 싶어 하는 마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어떤 한 아이가 친구들에게 엄마의 거칠고 흉터 많은 손을 보여주기 창피해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흉터는 아이가 갓난아기였을 때 집에 불이 나자 엄마가 맨손으로 불길을 헤치며 아이를 구해냈기에 생긴 흔적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아이에게 엄마의 흉터는 더 이상 ‘부끄러움’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완벽한 사랑’의 훈장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육아와 살림으로 거칠어진 손,
직장에서 가족을 위해 자존심을 굽히며 생긴 마음의 상처들을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여러분의 가정을 살리기 위해 여러분이 지고 가는 ‘거룩한 흔적’이며,
우리를 위해 찢기신 예수님의 손과 가장 닮아있는 모습입니다.
본문에 이어진 19절에서 베드로는
고난받으신 예수가 결국 부활하여 우리에게 “유쾌하게 되는 날”을 주셨다고 선포합니다.
고난은 결코 결론이 아닙니다.
고난은 부활이라는 영광스러운 열매를 맺기 위한 씨앗의 죽음과 같습니다.
아이가 처음 걸음마를 떼기까지 수천 번을 넘어집니다.
부모는 옆에서 아이가 넘어질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지만,
다시 일어서길 기다리며 끝까지 응원합니다.
마침내 아이가 혼자 힘으로 한 걸음을 내디딜 때,
그동안의 모든 수고와 걱정은 순식간에 환희로 바뀝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눈물로 씨를 뿌리는 고난의 시기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여러분의 가정에 ‘부활의 기쁨’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아이의 성장을 통해, 그리고 변화되는 부모의 모습을 통해
주님은 “이 모든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요즘 제 어린 시절을 돌아보곤 합니다.
그때는 1940년대 이후 30여 년 동안 이어졌던 많은 전쟁의 후유증이 점점 사그라지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수많은 나라와 사람들이 제 욕심 때문에 서로 싸우고 해쳤던 일들이,
결국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서로를 죽이는 멸망의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던 때였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함께 잘 살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평화의 세상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느끼다시피, 지금은 다시 많은 나라가 싸우고 있습니다.
북반구에서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중동 지역에서는 이란과 이스라엘이 대립하고 있으며,
남아메리카 지역에서도 공습과 분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물가는 오르고 삶의 자리는 불안합니다.
이 모든 고난을 우리 스스로 통제할 수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저 우리는 믿음으로 우리 각자의 삶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나가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이 겪는 고난은 무의미한 소모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헌신을 보고 계시며,
그 고난을 통해 여러분을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시키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을 함께 정리하며 생각해 봅시다.
오늘 설교의 제목이 왜
‘고난의 고통’이 아니라
‘고난의 신비’일까요?
세상은 고난을 피해야 할 저주나 실패로 보지만,
성경은 고난 속에 하나님의 깊은 지혜가 숨겨져 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비’입니다.
신비란 인간의 머리로는 다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손길 안에서 놀라운 결과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비참한 사형틀이었으나 인류를 살리는 구원의 문이 되었듯,
우리의 고난도 겉으로는 아픔이지만 그 속에는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연금술이 들어 있습니다.
내가 작아지고 무너지는 것 같은 그 순간에,
오히려 내 안에 그리스도가 커지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세상을 사는 우리들도 보듯이,
부모가 되어 자녀를 위해 내 삶을 희생하는 것이 억울한 일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닮아가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오늘 깨달아야 할 고난의 신비입니다.
사순절 기간,
내 짐이 너무 무겁다고 느껴질 때
우리보다 앞서 십자가를 지고 가신 주님을 바라봅시다.
“다 이루었다” 하신 그분의 승리가
곧 우리 가정의 승리가 될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짜증과 피로 대신
그 속에 담긴 고난의 신비를 묵상하며
서로를 격려하는 가정을 이루시기를 축복합니다.
기도
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셔서 우리의 고통을 직접 겪으신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일상의 고단함 속에 숨겨진 거룩한 의미를 발견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어린 자녀를 돌보며 나를 지워가는 과정이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숭고한 예배임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지친 남편과 아내의 어깨를 주님의 손으로 어루만져 주시고,
서로를 향한 정죄보다는 긍휼의 마음을 부어 주시옵소서.
우리 가정이 단순히 생존을 위해 버티는 곳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 사랑을 완성해가는 작은 천국이 되게 하옵소서.
눈물로 씨를 뿌리는 이 시간 끝에,
주님이 약속하신 찬란한 부활의 기쁨을 온 가족이 함께 누리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동행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