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11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어린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설교: 짐승의 소리와 어린 양의 음성
우리는 지난 시간에 바다에서 올라온 무시무시한 첫 번째 짐승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그 짐승은 거대한 권력과 물리적인 힘을 가지고 성도들을 압박하며, "나에게 절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외적인 박해의 상징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의 황제 숭배와 같은 노골적인 위협이었죠.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그보다 훨씬 더 교묘하고, 어찌 보면 더 무서운 존재인 '두 번째 짐승'의 등장을 보여줍니다. 이 짐승은 우리를 칼로 위협하기보다 목소리로 유혹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흔히 당하는 '보이스 피싱'을 생각해보십시오. 사기꾼이 처음부터 칼을 들고 나타나 "돈 내놔!"라고 하면 누가 속겠습니까? 오히려 그들은 너무나 친절합니다. "고객님을 위해서", "당신의 자녀를 위해서"라고 말하며 우리가 가장 신뢰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흉내 냅니다. 오늘 본문의 두 번째 짐승이 딱 그렇습니다. 외모는 '어린 양' 같은데, 입을 열면 '용의 소리'가 나옵니다.
이 혼란스러운 시대, 사방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소리 중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분별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이 고난의 터널을 끝까지 인내하며 통과할 수 있을까요? 오늘 이 50분의 시간을 통해, 우리 영혼의 귀를 씻고 오직 어린 양 되신 주님의 음성에만 주파수를 맞추는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9절의 말씀 함께 보겠습니다.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요한계시록에서 이 구절은 일곱 교회에 편지하실 때마다 반복되었던 아주 엄중한 경고입니다. "귀가 있는데 못 듣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성경이 말하는 '들음'은 물리적인 청각의 문제가 아니라 '영적 실체를 파악하는 통찰력'의 문제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소리의 과잉 시대입니다. TV를 틀면, 유튜브를 켜면, 아니 길을 걷기만 해도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말을 겁니다.
"돈이 최고다. 돈이 있어야 네 노후가 보장된다." "자존심을 지켜라. 남에게 뒤처지면 끝장이다." "즐겨라. 인생은 짧고 네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짐승의 소리입니다. 짐승의 소리는 언제나 '나'를 중심에 두게 만듭니다. 하나님 없이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속삭입니다. 반면, 주님의 음성은 때로 투박하고 아픕니다. "자기를 부인하라", "십자가를 지라", "좁은 길로 가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안개가 자욱하게 낀 밤바다를 항해하는 선장을 상상해 보십시오. 주변에는 화려한 도시의 네온사인이 반짝이고, 다른 배들의 시끄러운 경적 소리가 들립니다. 하지만 선장이 생명을 걸고 귀를 기울여야 할 단 하나의 소리는 무엇입니까? 바로 저 멀리서 들려오는 희미하지만 정확한 등대의 '신호음'입니다. 주변의 화려한 음악 소리에 취해 등대의 신호를 놓치는 순간, 배는 암초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나고 맙니다.
성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유행가는 화려합니다. 우리 귀를 즐겁게 하고, 우리 욕망을 자극합니다. 하지만 그 소리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오직 투박해 보이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를 살립니다.
질문해 보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귀는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지난 일주일 동안 여러분의 마음을 가장 강하게 사로잡았던 목소리는 무엇이었습니까? 주일 예배 때 들었던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입니까, 아니면 세상 뉴스에서 들었던 "불안과 공포"의 소리입니까?
우리는 '듣고 싶은 소리'를 듣는 자가 아니라, '들어야 할 소리'를 듣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짐승은 우리의 욕망을 부추겨 영적 청력을 마비시킵니다. "이 정도는 괜찮아",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라는 소리에 속지 마십시오.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명령하십니다. "귀가 있거든, 제발 내 음성을 들어라!"
이를 생각하며 이어서 10절의 말씀도 함께 보겠습니다.
10.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이 말씀은 우리에게 매우 당혹스럽고도 정직한 신앙의 현실을 대면하게 합니다. 우리는 흔히 "예수 잘 믿으면 감옥에 갈 일도 없고, 죽을 고비도 피해 간다"고 생각합니다. 소위 말하는 '성공 신학'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분명히 말합니다. 사로잡혀 갈 자가 있고, 칼에 죽을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위기를 모면하거나 요술을 부려 고난을 삭제하는 기술이 아닙니다. 오히려 기독교 신앙은 그 위기 한복판을 뚫고 지나가는 '견디는 실력'입니다.
"여기 있느니라"는 표현에 주목하십시오. 성도의 진짜 믿음이 어디에서 증명됩니까? 평안할 때, 모든 일이 잘 풀릴 때,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을 때입니까? 아닙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이 닥쳤을 때, 억울하게 사로잡혀 갈 때, 죽음의 공포가 눈앞에 있을 때, 바로 '거기'에 성도의 인내와 믿음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명품 도자기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아시지요? 도공의 손길을 거친 흙덩이는 반드시 섭씨 1,200도가 넘는 뜨거운 가마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가마 밖에서 아무리 "나는 아름다운 도자기다"라고 외쳐봐야 소용없습니다. 그 뜨거운 불길 속에서 깨지지 않고, 그 열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견뎌냈을 때 비로소 은은한 빛깔을 내는 작품이 됩니다.
우리 인생에도 가마 속에 들어간 것 같은 순간들이 있습니다. 경제적인 결핍의 불길, 질병의 불길, 관계의 단절이라는 뜨거운 가마 속에 갇힐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께 원망합니다. "왜 나를 여기서 꺼내주지 않으십니까?"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지금 너를 깨뜨리려는 것이 아니라, 너를 완성하고 있는 중이란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은 우리를 망가뜨리지 못합니다. 다만 우리 안의 불순물을 태워버릴 뿐입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를 보십시오. 그들이 빌립보 감옥 깊은 곳에 발이 착고에 채인 채 갇혔을 때, 그 '사로잡힌 자리'에서 무엇을 했습니까? 원망했습니까? 아닙니다. 찬송했습니다. 그들이 찬송할 때 옥터가 흔들렸습니다. 상황은 사로잡힌 상황이었지만, 그들의 영혼은 이미 승리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처한 그 절망적인 자리가 바로 여러분의 믿음을 증명할 '여기'입니다. 포기하지 마십시오. 인내는 무작정 참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며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이어서 11절의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11.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어린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첫 번째 짐승이 '폭력'으로 다가왔다면, 이 두 번째 짐승은 '기만'으로 다가옵니다. 이 짐승의 특징은 '겉과 속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겉모습은 '어린 양' 같습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어린 양은 누구를 상징합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즉, 이 짐승은 아주 기독교적인 모습으로 위장하고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그는 사랑을 말하고, 평화를 말하며, 정의를 외칩니다. 우리를 위로하는 척하며 다가옵니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실체는 '용의 소리'입니다. 용의 소리가 무엇입니까? 창세기부터 시작된 사탄의 언어, 즉 "네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교만의 소리요, "하나님의 말씀은 가짜다"라고 의심하게 만드는 거짓의 소리입니다.
오늘날 이 두 번째 짐승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 곁에 있습니까?
때로는 "번영"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옵니다. "예수 믿으면 무조건 부자 되고 성공해야지, 가난한 건 죄야"라고 속삭이며 우리의 탐욕을 자극합니다.
때로는 "편리함"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옵니다. "주일 한 번 빠지는 게 어때? 집에서 유튜브로 편하게 봐. 네 몸이 피곤한 게 하나님 마음 아프게 하는 거야"라고 말하며 헌신을 무너뜨립니다.
때로는 "타협"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옵니다. "세상 사람들과 섞여 살려면 적당히 거짓말도 하고 적당히 술수도 부려야지, 너무 유별나게 믿으면 독불장군 돼."
성도 여러분, 겉모습에 속지 마십시오. 그가 아무리 양의 가죽을 쓰고 부드럽게 말해도, 그 말의 끝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면, 나 자신의 영광을 구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짐승의 소리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성도에게 닥치는 고난은 이상한 일이 아니며, 그 자리에서 우리는 인내와 믿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둘째, 세상은 양의 탈을 쓰고 우리에게 다가와 하나님의 길에서 멀어지게 하려 합니다.
우리는 '듣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겉모습이 양이라고 해서 다 양이 아닙니다.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복음인지, 아니면 나를 부추기는 욕망의 소리인지 분별하십시오.
비록 우리가 사로잡혀 가는 것 같은 상황에 처할지라도,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음을 신뢰하며 이번 한 주도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다함꼐 기도하겠습니다.
하늘 보좌에서 우리를 살피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영적 현주소를 확인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때때로 세상의 위협이 너무 커서 두렵고, 양의 탈을 쓴 유혹이 너무나 달콤해서 흔들릴 때가 많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에게 들을 귀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세상의 화려한 소리에 현혹되지 않고, 오직 진리의 말씀만을 분별하여 듣게 하옵소서. 고난의 파도가 몰아칠 때 도망칠 곳을 찾기보다, 그 자리에서 인내와 믿음으로 버텨내어 정금 같은 신앙으로 거듭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교회의 모든 성도가 짐승의 소리에 무릎 꿇지 않고, 오직 어린 양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따르는 거룩한 신부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내일부터 시작되는 삶의 현장에서도 우리가 생명책에 기록된 자임을 잊지 않고 당당하게 승리할 것을 믿사오며,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