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누리선교교회
복받는 선한 시선 (잠 22:9 주일예배 20260614) 본문
성경본문: 잠언 22:9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설교제목: 복받는 선한 시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이 은혜의 자리에 나아오셨습니까? 우리는 똑같은 풍경을 보아도 어떤 색깔의 안경을 썼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세상을 경험합니다. 파란색 안경을 쓰면 온 세상이 차갑고 쓸쓸해 보이지만, 노란색 안경을 쓰면 온 세상이 따뜻하고 포근하게 보입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이 어떤 렌즈를 가지고 삶을 대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은 풍요로워지기도 하고 반대로 한없이 빈곤해지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결핍의 안경'을 쓰라고 부추깁니다. "너는 아직 부족해, 더 많이 가져야 해, 남들에게 뒤처지면 끝장이야." 이런 불안한 목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우리의 시선은 타인을 경쟁자로 보고, 내가 가진 것을 빼앗기지 않을까 염려하는 불안한 눈으로 변해버리기 쉽습니다. 많이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마음은 언제나 굶주려 있는 상태, 이것이 바로 오늘날 많은 현대인이 겪고 있는 아픔입니다.
오늘 성경은 이 거친 세상 속에서 우리가 반드시 회복해야 할 전혀 다른 종류의 시선, 곧 '하나님의 시선'에 대해 말씀합니다. 이 시간, 솔로몬의 지혜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인 시력을 깨끗하게 교정해 주시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 잠언 22장 9절은 우리 인생의 참된 복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명확한 이정표를 제시합니다. 함께 보시겠습니다.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성경은 참된 복을 받는 사람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그 출발점을 '선한 눈'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선한 눈'은 히브리어 원어로 '토브-아인(Tob-Ayin)'이라고 합니다. 직역하면 '좋은 눈', 혹은 '너그러운 눈'입니다. 고대 유대 사회에서 눈은 단순히 사물을 보는 신체 기관이 아니었습니다. 그 사람의 마음속 영적 상태와 인격이 그대로 투영되는 '마음의 거울'이었습니다. 잠언을 보면 이 선한 눈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악한 눈'이 자주 등장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악한 눈은 무서운 눈이 아니라, 타인을 향해 인색하고, 질투하며, 늘 이익을 계산하는 '이기적인 눈'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본문이 찬양하는 '선한 눈'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눈일까요?
첫째,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신앙의 눈'입니다. 내 손에 쥐어진 물질, 건강, 그리고 자녀가 내 노력으로 얻은 내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이 잠시 맡겨주신 '선물'임을 알아보는 눈입니다. 이 눈이 열릴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을 향해 너그러워질 수 있습니다.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기에, 아까워하지 않고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타인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자비의 눈'입니다. 어려운 이웃을 볼 때 "저 사람은 게을러서 그래" 하고 정죄하는 눈이 아니라, "얼마나 힘들고 지쳤을까" 하며 주님의 심장으로 그들의 필요를 알아채는 눈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 선한 눈이 마음의 동정에만 머물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여기서 '양식'은 히브리어로 '레헴'인데, 내가 먹고 남은 찌꺼기가 아니라 나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용할 양식을 뜻합니다. 선한 눈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먹어야 할 소중한 양식을 쪼개어 이웃에게 흘려보냅니다. 왜냐하면 그의 눈에는 내가 조금 덜 먹더라도, 함께 살아가는 이웃의 생명이 훨씬 더 귀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초기 기독교 시절, 로마 제국에 끔찍한 대역병이 돌았습니다. 당시 권력자들과 이방인들은 감염이 두려워 병든 가족과 이웃을 성 밖에 버리고 도망치기 바빴습니다. 오직 자신의 생존만을 생각하는 '악한 눈'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은혜로 '선한 눈'을 가졌던 그리스도인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버려진 병자들을 찾아가 고름을 닦아주고 자신들의 소중한 양식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감염되어 목숨을 잃었습니다.
세상은 그들을 향해 "왜 저렇게 미련하게 죽음을 자초하느냐"며 바보 같다고 조롱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의 그 따뜻한 시선과 조건 없는 나눔은 결국 거대한 로마 제국의 심장을 녹였고, 복음이 온 세계로 흘러가는 구원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세상의 계산법으로는 내 것을 남에게 주면 내 몫이 줄어들어 불행해질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역설적인 하늘의 법칙을 선포합니다. 그러한 선한 눈을 가진 자가 오히려 "복을 받으리니."
여기에 쓰인 '복을 받는다'는 말은 수동태입니다. 즉, 내가 스스로 복을 움켜쥐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으로 채워 주시는 복을 경험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내 손을 움켜쥐면 손안의 한 줌만 남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고 손을 펼쳐 나눌 때, 하나님의 거대한 하늘 창고가 우리의 삶을 향해 열리는 신비를 맛보게 될 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예배드리는 우리와 우리 가정이 이 인색한 세상 속에서 '선한 눈'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복을 누리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첫째, '소유의 렌즈'를 '존재의 렌즈'로 바꿔야 합니다. 우리는 가정에서조차 자녀나 배우자를 바라볼 때 성적표나 연봉이라는 '소유의 렌즈'로 평가할 때가 많습니다. "이번에 몇 점 받아왔니?", "이번 달에는 얼마나 벌었어?"라는 질문은 우리 가정을 삭막한 경쟁터로 만듭니다. 오늘부터 가족을 바라볼 때, 하나님이 보내주신 가장 고귀한 선물이라는 '존재 자체의 렌즈'로 바라보아 주십시오. 실수했을 때도 정죄의 눈 대신 격려의 눈으로 보고, 부족함이 보일 때 비난하는 대신 내가 채워주어야 할 영역임을 발견하는 눈을 가질 때, 우리의 가정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하늘의 안식처가 될 것입니다.
둘째, 작은 것부터 '흘려보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선한 눈은 거창한 기부나 대단한 영웅적 행위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처럼 내게 있는 작은 양식, 작은 여유를 주위의 연약한 이들에게 나누는 것입니다. 학교나 직장에서 외로워하는 이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 지친 동료의 짐을 조금 나누어 지는 것, 우리 주변의 소외된 이웃을 위해 작은 정성을 구별하여 심는 것 모두가 선한 눈의 실천입니다. 내가 움켜쥐려는 손을 펴서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줄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영혼의 깊은 만족과 평안이라는 하나님의 진짜 복이 우리의 심령에 가득 차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의 가장 큰 비극은 통장의 잔고가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해도 만족할 줄 모르는 '인색하고 악한 눈'을 가지고 평생을 불안 속에 살아가는 것이 진짜 비극입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그 어두운 안경을 벗어던지고, 하나님의 풍요로운 은혜를 신뢰하는 '선한 눈'을 가지라고 초청하십니다.
우리 예수님이 바로 그 '선한 눈'의 완성이셨습니다. 죄로 인해 영적으로 파산하여 죽어가던 저와 여러분을 불쌍히 여기시고, 자신의 살과 피를 생명의 양식으로 아낌없이 내어주신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이미 그 거대한 사랑의 시선과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이제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 주님의 그 선한 눈을 닮아 가십시다. 나의 만족만을 위해 움켜쥐던 손을 펴서 이웃의 필요를 채우고, 결핍이 아닌 하나님의 풍요를 선포하며 걸어갑시다. 그리하여 우리가 걷는 모든 걸음마다 하나님의 살아계신 복이 임하고, 우리 가정을 통해 메마른 세상이 주님의 따뜻한 사랑을 보게 되는 복된 통로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온 우주의 주인이시며 모든 좋은 것을 아낌없이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잠언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영적인 시선을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세상의 경쟁과 결핍 속에서 더 많이 움켜쥐려 했던 우리의 인색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제 성령의 능력으로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선한 눈'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우리 가정이 비교와 정죄가 아닌, 사랑과 용납의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게 하시고, 소외된 이웃을 향해 자비의 마음을 품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주신 작은 양식과 위로를 기쁨으로 나누며 살아가게 하시고, 예수님처럼 베풀고 섬기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 삶의 모든 자리마다 하늘의 평안과 은혜가 넘치게 하옵소서.
영적으로 주린 우리를 위해 자신의 전부를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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